[더팩트 | 문은혜 기자] 원·달러 환율이 1470원대까지 오르면서 식품업계의 원가 부담이 현실화하고 있다. 식품업계의 원재료 수입 의존도는 70%에 육박해 고환율이 장기화될 경우 먹거리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1400원대로 올라선 원·달러 환율은 최근 1470원대까지 치솟으며 고공행진 중이다. 1500원대를 넘보는 강달러 현상이 지속되자 원재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식품업계 부담도 날로 커지고 있다.
지난 1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공개한 '식품산업 원료소비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식품제조업체의 국산 원료(밀, 대두, 옥수수, 원당 등) 사용 비중은 31.9%로 나타났다. 나머지 약 70%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 곡물·육류·유제품·설탕 등 세계 식량가격지수는 하락세를 그리는 중이다. 지난달 기준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26.4포인트로 전월 대비 1.6%, 전년 동월 대비 0.4% 떨어졌다. 그러나 이같은 원재료 가격 하락보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고환율이 식품업계에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최근 3분기 실적을 발표한 식품업체들은 고환율에 따른 손실 가능성을 예고했다.
CJ제일제당은 3분기 사업보고서에서 원·달러 환율이 10% 상승할 경우 세후 이익이 13억원 감소한다고 밝혔다. 롯데웰푸드도 원·달러 환율 10% 변동시 35억원의 세전 손익 영향이 있다고 공시했다.
특히 내수 중심의 식품기업들은 더 비상이 걸렸다. 수출 비중이 높은 업체의 경우 환차익을 통해 고환율로 인한 원가 부담을 일부 상쇄할 수 있는 반면 내수 비중이 큰 업체들은 비용 증가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전체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10% 안팎인 오뚜기의 경우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 증가한 2조7783억원을 기록했으나 영업이익은 1984억원에서 1579억원으로 20.4%나 감소했다. 오뚜기 관계자는 "올해 원가 부담과 판관비 증가로 이익 측면의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불닭 시리즈'를 중심으로 해외 수출이 매분기 늘어나고 있는 삼양식품은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3849억원)이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3446억원)을 넘어섰다. 삼양식품 전체 매출에서 해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81%까지 확대됐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수출 호조, 고환율 효과 등에 힘입어 높은 성장세를 기록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해외 수출 비중이 높더라도 고환율이 장기화될수록 비용 부담이 커지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경기 침체로 인한 소비 부진이 이어지는 와중에 고환율 리스크까지 겹치자 식품업계 내에서는 제품 가격 인상에 대한 필요성이 슬금슬금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의 강력한 물가 관리 기조 속에서 가격을 쉽게 올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위기다.
실제로 정부는 최근 식품사들의 담합, 슈링크플레이션 등 행태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나섰다. 체감 물가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원가 명목의 인상이나 내용물 축소 등 점검에 나선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경우 지난달 설탕 담합 혐의로 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 등을 상대로 제재 절차에 착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같은 관리에도 고환율이 지속될 경우 식품업계의 가격 인상은 불가피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환율이 원가에 바로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고환율이 오래 이어지면 비용 부담이 결국 커질 수 밖에 없다"며 "앞으로의 상황을 잘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