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직기에서 자동차까지"…110년 이어진 토요타의 '끝없는 개선'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 110년 제조 정신 현장 방문
방직기에서 완성차까지…토요타 발전사 한눈에

1936년 완성된 토요타 최초의 양산형 승용차 AA형 실물 전시. 유선형 디자인이 특징이다. /아이치현=황지향 기자

[더팩트ㅣ아이치현=황지향 기자] 토요타자동차그룹은 올해까지 5년째 글로벌 판매 1위를 지키고 있다. 그 출발점은 약 110년 전 한 발명가가 세운 작은 공장에서 비롯됐다. 방직기에서 출발한 기술은 오늘날 세계 최대 자동차 제조사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일 찾은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의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은 토요타그룹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곳은 창업자 토요다 사키치가 설립한 자동직기 공장이 있던 부지로 당시의 외관을 최대한 보존한 채 복원됐다. 오호라 카즈히코 관장은 "토요다 사키치가 동력으로 움직이는 자동직기를 발명하면서 토요타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기념관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방직기 생산이 중단됐다가 1994년 토요타그룹이 '제조의 정신을 다음 세대에 전하자'는 취지로 복원해 문을 열었다. 올해에만 140만여 명이 다녀간 일본의 대표적인 산업유산으로 자리 잡았다.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 직원이 셔틀(실통)을 교체하는 시연을 하고 있다. G형 자동직기는 실이 떨어지면 새 셔틀이 자동으로 투입되는 구조다. /황지향 기자

전시는 섬유기계관과 자동차관으로 구성된다. 섬유기계관에는 1924년 개발된 G형 자동직기를 비롯해 약 100여 대의 방직기가 전시돼 있다. 이날 현장에서는 직원이 직접 G형 자동직기를 작동시켜 실이 끊어지면 자동으로 멈추고 새 셔틀(실통)을 투입하는 과정을 시연했다. 100년 전 개발된 기술이 여전히 완벽히 작동하는 모습에 관람객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해설을 맡은 오츠보 다카시 시니어 어드바이저는 "G형 자동직기의 핵심은 '작업자의 손을 덜어주는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토요다 사키치가 방직을 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더 편하고 안전한 기계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고 했다.

토요다 사키치가 발명한 수동 방직기를 직원이 시연하고 있다. /황지향 기자

실이 끊어졌을 때 기계가 즉시 작동을 멈추는 장면도 이어졌다. 오츠보 어드바이저는 "불량품을 만들지 않기 위한 설계로 실이 하나라도 끊어지면 기계가 자동으로 멈추게 돼 있다"며 "이런 기능 덕분에 누구나 손쉽게 다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G형 자동직기는 1924년 완성된 토요다 사키치의 마지막 방직기이며, 1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철학이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동차관에서는 토요다 키이치로가 일본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던 당시의 도전과 노력이 재현돼 있다. 그는 G형 자동직기의 특허를 영국 플랫(Platt)사에 매각하기 위해 출장길에 올랐다가 거리마다 늘어선 자동차 행렬을 보고 새로운 산업의 가능성을 확신했다. 귀국 후 특허 판매 대금 100만엔을 자동차 연구 자금으로 투입하며 본격적인 개발에 나섰다.

토요다 키이치로가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기 전 자전거에 엔진을 장착한 실험기의 모습을 재현한 전시물. 토요타의 자동차 개발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보여준다. /황지향 기자

초기의 실험은 자전거에 엔진을 장착하는 데서 시작됐다. 이어 나무틀에 철판을 두드려 차체를 제작했고, 1936년에는 토요타의 첫 유선형 승용차인 AA형을 완성했다. 이후 상업용 트럭을 불과 9개월 만에 개발했으며, 시운전 과정에서 매일같이 고장이 나 수백 번의 수정을 반복했다. 당시 영업책임자 가미야 신야가 고객 불만 전화를 매일 전달하자 키이치로는 1년간 800곳의 문제를 고쳤다. 이 경험은 '고객이 우선이고 품질이 가장 중요하다'는 토요타의 품질관리 철학으로 이어졌다.

'토요타'라는 사명은 창업자 이름인 '토요다'에서 변형된 것이다. 키이치로는 가족 이름과 회사를 구분하기 위해 카타카나 표기 '토요타'를 선택했다. 여덟 획으로 이뤄져 번영을 상징한다는 점과 숫자 8을 좋아하는 나고야 지역 정서도 반영됐다.

토요다 키이치로가 나무틀에 철판을 두드려 차체를 제작하던 과정을 재현한 전시. /황지향 기자

1937년 회사를 설립한 키이치로는 부품 재고를 최소화하기 위한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 방식을 도입했다. 필요한 부품을 필요한 시점에만 조달·조립하는 생산방식으로 효율을 극대화한 것이다. 이어 1938년 자동차기술학교와 1939년 연구소를 세워 기술 인재 양성에도 힘썼다.

이러한 흐름은 토요타가 창립기부터 이어온 모노즈쿠리 정신으로 발전했다. 모노즈쿠리는 단순한 생산이 아닌 장인정신과 품질 중심의 제조철학을 뜻한다. 사람의 기술과 손맛을 존중하는 토요타식 제조문화로 계승된 셈이다.

1950년에는 토요타의 첫 전기자동차가 완성됐다. 오츠보 어드바이저는 "토요타의 전동화가 늦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첫 전기차는 이미 1950년에 여섯 대 시제작됐다"고 말했다. 이후 토요타는 에어백과 잠김방지제동장치(ABS) 같은 안전기술의 토대를 다졌고, 하이브리드와 수소연료전지차로 전동화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기념관 자동차관 마지막 구역에 설치된 차체 용접 로봇 전시. 실제 공장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구조다. /황지향 기자

마지막 전시 구역에는 실제 공장을 옮겨놓은 듯한 현대식 생산라인이 재현돼 있다. 용접 로봇이 차체를 정밀하게 이어 붙이고, 도장·조립 공정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모습은 '움직이는 공장'을 보는 듯한 생동감을 전했다.

100년 전 자동직기에서 출발한 '도전과 개선' 정신은 오늘날에도 토요타의 기술과 공정 속에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hya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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