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라진 기자] 한국투자증권이 또다시 내부통제 부실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직원의 일탈로 인한 금융사고가 발생하면서 경영 리스크까지 확산될 양상이다. 특히 최근 금융당국이 경영진의 관리 책임을 직접 묻는 '책무구조도'를 도입한 가운데,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사장이 첫 제재 대상이 될 가능성도 나온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7월부터 대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책무구조도를 정식 도입했다.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임원별 직책에 따른 책임 범위를 문서화해 내부통제 실패 시 경영진의 책임을 직접 추궁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일명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불린다.
금융당국은 최근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며 내부통제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증권·운용사 CEO 간담회에서 "불완전판매 차단 등 투자자 보호를 위한 책무구조도의 안착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투자증권 강남지점 직원 A씨가 고객으로부터 돈을 받아 도박 자금으로 사용한 사건이 발생했다. A씨는 사건 후 가족과 동료에게 도박 사실을 알리고 잠적했으며, 이후 서울의 한 등산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피해액은 수억원 규모로 알려졌다. 경찰은 도박 자금 활용 등 사실 여부를 수사 중이다.
증권가에선 이번 사안을 단순한 개인 일탈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고객 자금이 외부로 유출되는 과정에서 내부 감시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내부통제의 기본이 무너진 사건"이라며 "정부의 금융 소비자 보호 강화 기조 속 금융당국이 증권사의 책무구조도 점검에 나서고 있어 한국투자증권도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투자증권의 내부통제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월에는 2019~2023년 사업보고서 회계오류 정정으로 약 5조7000억원의 매출이 과다 계상된 사실이 드러나 금감원으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았다. 이어 4월에는 사모펀드 판매 과정에서 적합성 원칙 준수 의무를 위반해 '기관경고' 제재를 받았다.
이번 사건은 한국투자증권의 핵심 과제인 IMA(종합투자계좌) 인가 심사에도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이르면 이달 중 1차 IMA 사업자를 지정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한투와 미래에셋증권이 유력 후보로 꼽혀왔다. 그러나 자기자본 8조원 이상 요건 외에도 내부통제와 리스크관리 체계가 주요 평가 항목인 만큼 이번 사고가 심사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금융지주는 지난 9월 한국투자증권에 9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하며 자기자본을 8조원대로 끌어올렸다. 내부통제 부실로 IMA 인가가 불발될 경우, 그동안의 자본 확충 노력도 무위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경영 리스크로도 번지는 양상이다. 김성환 사장의 임기는 내년 3월 만료된다. 실적 호조에도 불구하고 잇단 통제 리스크로 연임 전망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성과는 인정하지만 내부통제가 발목을 잡았다"는 기류도 나온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사건이 금융당국이 도입한 책무구조도의 첫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제도 도입 후 아직 CEO 제재 사례가 없는 만큼, 당국이 본보기 성격의 첫 사례를 만들 가능성이 제기된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회계오류, 사모펀드 제재, 벨기에 펀드 손실에 이어 이번 금융사고까지 터지며 한국투자증권의 내부통제 리스크가 누적되고 있다"며 "김성환 사장의 연임 불확실성은 물론, 당국이 IMA 인가를 쉽게 내주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 최근 벨기에 펀드 사태로 소비자 불만이 폭증하면서, 한국투자증권은 잇따른 내부통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금감원은 현재 현장검사를 진행 중이며, 이찬진 금감원장은 최근 피해 투자자들과의 면담 자리에서 "소비자 보호 강화는 금융감독의 핵심 과제"라고 언급했다.
벨기에 펀드와 직원 사건을 둘러싼 투자자 불신은 날로 격화하고 있다. 네이버 종목토론방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한국투자증권 거래를 중단하겠다", "경영진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글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회장은 벨기에 펀드 사태 책임지고 사퇴하라"는 게시글이 다수 올라오는 등 신뢰 훼손이 가시화되는 모습이다. 한국투자증권은 가장 많은 약 589억원어치를 팔았다.
또한 A 직원이 고객의 돈을 받아 도박 자금으로 사용한 점에 대해서도 "한국투자증권에서 주식 거래하는데 걱정된다", "피해액 보상은 어떻게 되는거냐" 등의 우려가 나온다.
한국투자증권은 이번 사안과 관련해 말을 아끼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민감한 사안이라 언급하기 조심스럽다"고만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