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수년째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 선영을 찾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신 창업주 생전 부친에 대한 효심을 강조했고, 이를 경영권 분쟁에서도 활용했던 터라, 신 전 부회장이 선영 방문을 중단한 배경에 재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4일 재계에 따르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달 31일 울산시 울주군에 있는 신 창업주 선영을 찾아 참배했다. 경주에서 진행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 일정을 소화한 직후 신 창업주 탄생 104주기를 맞아 선영을 방문한 것이다.
지난 1921년 11월 3일 울산에서 태어난 신 창업주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제과 사업을 펼쳤고,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사업 영역을 넓혀 롯데그룹을 재계 5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인물이다. 세계 최고층 빌딩을 지어 한국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꿈을 잠실 롯데월드타워를 통해 이룬 뒤 2020년 1월 19일 향년 99세로 타계했다.
롯데그룹 2대 회장인 신 회장은 연초와 명절 등 특정 시기에 맞춰 신 창업주 선영을 찾고 있다. 부친의 도전 정신과 기업보국(기업을 통해 나라를 이롭게 한다) 뜻을 기리는 차원이다. 신 회장은 지난해 9월 추석 연휴 중에도 울주군 선영을 방문해 고인을 기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오히려 신 창업주의 장남인 신동주 전 부회장은 선영을 찾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신 전 부회장은 2022년 11월 이후 사실상 선영 방문을 중단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신 전 부회장이 앞서 강조한 효심을 고려한다면 다소 의외의 행보라는 분석이다. 신 전 부회장은 2015년부터 진행된, '경영권 분쟁' 당시 언론에 자신이 신 창업주를 직접 간호하고 있다는 사실 등을 알리며 효심을 강조한 바 있다.
신 전 부회장은 한국 방문 자체를 대폭 줄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민유성 전 산업은행장의 변호사법 위반 재판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민 전 행장을 기소한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핵심 증인으로 신 전 부회장의 법정 출석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신 전 부회장은 주로 해외에 머무르며 이를 응하지 않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은 변호사법 위반과 관련한 법정 다툼을 발생시킨 장본인이다. 신 전 부회장과 민 전 행장은 경영권 분쟁 당시 '프로젝트L' 자문 계약을 맺고 함께 '롯데 흔들기'에 나섰다.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틀어졌고, 민 전 행장은 신 전 부회장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했다며 100억원대 용역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여기에서 민 전 행장이 일부 승소하자 신 전 부회장은 민 전 행장이 변호사 자격 없이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과 관련한 법률 자문을 맡았다며 변호사법 위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변호사법 위반 1심은 민 전 행장에 대해 징역 3년과 198억원 추징을 선고하며 "용역비 청구는 무효"라는 신 전 부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신 전 부회장 입장에서 변호사법 위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는 셈이다. 롯데그룹을 흠집 내기 위해 민 전 행장과 맺은 계약이 불법적인 성격이었다고 스스로 증언해야 하는 상황이다.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그룹 내 입지에 재차 치명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2심에서도 신 전 부회장의 증인 출석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법정에 출석한다면 민 전 행장 측과 '네 탓 공방'도 감수해야 한다. 재판에서 민 전 행장은 신 전 부회장이 '롯데 흔들기'를 주도했고, 자신은 재무 컨설팅 역할만 했는데, 신 전 부회장이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허위 진술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변호사법 위반 혐의 2심에서는 일본 컨설팅사, 탐정업체 등을 고용해 신동빈 회장을 몰아내기 위해 갖가지 일을 벌이는 등 신 전 부회장 관련 민감한 내용도 민 전 행장 측을 통해 다수 공개되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의 법정 출석이 이뤄진다면 진흙탕 싸움 가능성은 더욱 짙어질 전망이다.
신 전 부회장이 공개적인 행보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로는 앞서 발생한 비윤리성 논란도 거론된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 2022년 11월 신 창업주 선영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장애인전용주차구역에 자신의 업무 차량을 주차하는 모습이 포착돼 질타받았다. 공교롭게도 해당 논란 이후 신 전 부회장의 선영 방문이 뜸해졌다.
일각에서는 신 전 부회장이 선영을 찾지 않는 것은 예견된 일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앞서 강조한 효심 자체도 진정성 있게 평가받지 못한 측면이 있어서다. 실제로 신 창업주를 향한 신 전 부회장의 효심과 관련해 진정성 의혹은 수차례 제기됐다. 대표적으로 2015년 10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신관 34층 신 창업주의 집무실을 물리적으로 장악한 신 전 부회장은 신 창업주의 지시서, 위임장, 임명장 등 상법적 효력이 불분명한 문서와 영상들을 수시로 공개했고, 이후 단기 반복 학습을 통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문서·영상이라는 의심을 받았다.
신 전 부회장은 과거 기습적으로 신 창업주의 주식을 취하려 했다가 발각되기도 했다. 신 전 부회장은 2017년 1월 신 창업주가 납부해야 할 증여세 약 2000억원을 대신 납부하고 부친과 금전대차계약을 맺었다. 계약 기간은 한 달에 불과했고, 담보는 당시 신 창업주가 보유하고 있었던 롯데제과(현 롯데웰푸드), 롯데칠성음료 주식 전량이었다. 이후 한 달여가 지난 시점에 신 창업주는 신 전 부회장이 담보에 대한 강제집행 관련 서류를 발급받았다는 우편을 받게 됐고, 다른 자녀들도 해당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 결국, 신 전 부회장의 행동은 저지됐지만, 정신건강이 미약한 부친을 기망하고 맺은 금전대차계약으로 세간의 큰 비난을 샀다.
신 전 부회장 측은 2017년 롯데그룹 지주사인 롯데지주 설립 전 진행된 관련 계열사 주총장에도 신 창업주 후견인을 거치지 않은 위임장을 들고 왔다가 쫓겨나기도 했다. 신 전 부회장 측이 후견인 몰래 부친의 위임장 날인을 받은 상황이었다.
재계 관계자는 "그간 효심을 강조했고, 아직도 신 회장을 흔들기 위해 부친이 경영했던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신 전 부회장이 정작 신 창업주 선영을 3년 가까이 방문하지 않은 사실은 모순된 점이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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