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 규모가 230조원을 넘어섰다. 연금 시장에서 ETF는 장기 투자 수단으로 자리 잡으며, 단순한 금융 상품을 넘어 투자자의 미래를 책임지는 핵심 수단으로 부상했다. 투자자들은 다양한 테마와 시장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며 ETF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에 <더팩트>는 국내 주요 자산운용사에서 ETF 전략을 이끌고 있는 전문가를 만나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흐름과 전략, 그리고 향후 전망을 담았다. <편집자주>
[더팩트ㅣ박지웅 기자] 신한자산운용이 '업계 후발주자'라는 불리한 출발점을 오히려 '전략적 우위'로 전환하며 시장 내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단순히 상품 라인업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주주환원 기조·규제 환경·산업 구조 변화 등 거시적 요인을 ETF 설계 변수로 끌어들여 차별화된 상품을 제시하고 있다.
국내 최초 월배당 ETF를 시작으로 양자컴퓨팅·소형모듈원전(SMR)·조선·고배당 등 구조적 성장 테마를 잇따라 선보여온 신한자산운용은 단기 테마 추종이 아닌 '리레이팅 국면에 대응하는 정교한 ETF'를 만들겠다는 방향성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의 중심에는 SOL ETF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김정현 ETF사업총괄이 있다. <더팩트>는 김 총괄을 만나 빠르게 재편되는 ETF 시장 환경과 상품 전략, 그리고 '다음 상승 사이클'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들어봤다.
다음은 김정현 ETF사업총괄과 일문일답.
-최근 코스피가 3900선을 돌파하는 등 사상 최고점을 연일 경신하고 있다. 현재 시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지금의 시장은 단기적 버블이 아닌 '구조적 리레이팅(가치 재평가)'의 국면이다. 신정부 출범 이후 추진된 '상법 개정안'과 '배당소득 분리과세' 같은 정책들이 기업 지배구조와 주주환원 문화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유발했던 가장 큰 요인이 '주주환원 부족'이었다면, 이제는 그 부분이 점진적으로 해소되는 구간에 들어섰다. 이와 동시에 인공지능(AI) 시대의 개막, 그리고 미·중 패권 경쟁이 산업 지형 자체를 바꾸고 있다. 반도체와 배터리, 방산, 원전 등 한국이 강점을 가진 산업들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전략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이는 단순한 경기 순환적 반등이 아닌 '패러다임 전환'에 가깝다.
-신한자산운용은 ETF 시장에서 후발주자로 꼽히는데, 차별화 전략은?
ETF 사업은 단순히 규모의 경쟁이 아니라 콘텐츠와 구조의 경쟁이다. 이미 대형 운용사들이 시장 점유율을 확보한 상황에서 후발주자가 생존하려면 '차별화된 기획력'이 필요하다. 신한자산운용은 투자자의 눈높이와 시장의 변화 속도를 동시에 고려해 'SOL ETF'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했다. 특히 투자자들의 잠재적인 니즈를 발굴해 상품화하는 데 주력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국내 최초로 '월배당형 ETF'를 출시한 것이다. 당시에는 월 단위 배당 수요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매월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포트폴리오'에 대한 잠재적인 요구가 있었다. 그 부분을 먼저 읽고 시장에 제시한 결과, 투자자들의 반응이 매우 긍정적이었다.
-SOL ETF 상품 설계의 근간이 되는 원칙은 무엇인가?
모든 상품을 설계할 때 '내러티브 앤 넘버스(Narrative & Numbers)'라는 원칙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는 아스와스 다모다란 뉴욕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철학에서 차용한 개념으로, 성장의 스토리(내러티브)와 재무적 근거(넘버스)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뜻이다. 단순히 유행하는 테마나 기대감만으로는 장기적인 투자상품이 될 수 없다. 신한자산운용은 해당 산업의 구조와 성장 가능성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기업들의 실적이 실제로 그 서사를 뒷받침할 수 있는지 검증한다. 그 과정을 거쳐 ETF의 인덱스를 구성하고, 포트폴리오를 완성한다. 예를 들어 같은 양자컴퓨팅 테마 ETF라 하더라도, 산업 밸류체인 분석과 구성 종목의 비중 조정에 따라 성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결국 디테일이 성과를 만든다는 것이 신한자산운용 상품 철학의 핵심이다.
-최근 상장한 배당 ETF들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차별화 포인트는?
신한자산운용의 배당 ETF는 단순히 배당률이 높은 종목을 모아놓은 상품이 아니다. 지난 9월 상장한 'SOL 코리아고배당' ETF는 전통적인 고배당주에 더해 '감액 배당 기업'(자본잉여금·이익잉여금을 배당으로 지급해 비과세 혜택을 받는 기업)을 약 25% 편입했다. 그 결과 명목상 배당수익률도 높지만, 실제 투자자가 체감하는 실질 배당수익률은 훨씬 높다. 상장 한 달여 만에 운용자산이 1000억원을 돌파한 것도 그 차별화 덕분이라고 본다. 지난해 출시한 'SOL 금융지주플러스고배당' 역시 배당수익률 자체는 중간 수준이지만, 정부의 배당 선진화 정책이 본격화하면 가장 큰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섹터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향후 금융지주들은 배당성향을 높여야 할 유인이 크기 때문에, 이 상품의 중장기 성장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오는 28일 상장될 'SOL 미국넥스트테크TOP10 액티브 ETF'는 어떤 상품인지?
이 상품은 한마디로 말해 '다음의 미국'을 담은 ETF다. 기존의 S&P500이나 나스닥100이 '현재의 미국' 경제를 대표한다면, SOL 미국넥스트테크TOP10 ETF는 아직 대형지수에 편입되지 않았지만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미국이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산업군을 중심으로 설계됐다. AI, 반도체, 양자, 원자력, 드론·방산, 보안, AI 의료, 인프라 등 향후 5~10년간 미국이 국가 차원에서 집중 투자할 산업들이 이에 해당한다. 특히 이들 산업은 아직 중형주 비중이 높아 기존 지수에는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신한자산운용은 이런 공백을 메워 투자자에게 '다음 성장 사이클'을 선제적으로 제시하려는 것이다.
-APEC 등 미·중 정상회담을 앞둔 지금의 국면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정상 간 회동에서 일시적으로 긍정적인 뉴스가 나올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갈등 구조가 단기간에 해소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관세나 공급망 재편, 기술 패권 경쟁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날 사안이 아니다. 이런 구조적 긴장은 2026~2027년까지도 이어질 것이며, 그 과정에서 산업별로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갈릴 것이다. 다만 정상 간 협의를 계기로 부분적인 합의나 완화 신호는 나올 수 있고, 이런 국면에서는 리스크 관리나 철저한 투자 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40원을 돌파했다. 시장 위험 요인으로 보는지?
환율은 금융시장의 핵심 변수이자 '심리의 바로미터'다. 최근 급등세는 단순히 달러 강세라기보다 전 세계적인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의 결과라고 본다. 금값 급등과 비슷한 맥락이다. 다만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흔들린 것은 아니다. 지정학적 긴장과 무역 환경의 불확실성이 완화되면, 환율은 점진적으로 안정세를 되찾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환율 급등은 위험의 신호이기도 하지만,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 회복 속도 또한 빠를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점을 함께 봐야 한다.
-ETF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이를 뒷받침할 제도 개선 요구도 커지고 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펀드·ETF에도 적용해야 한다. 주식 직접 투자자는 분리과세 혜택을 받지만, 동일한 기업을 ETF로 투자하면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둘째, 연금계좌 내 국내 주식형 ETF의 과세 역차별을 해소해야 한다. 현재 일반 주식계좌에서는 국내 주식형 ETF 수익이 비과세(배당 제외)인데, 연금계좌에 넣으면 과표에 잡혀 연금소득세 대상이 된다. 이런 구조적 비효율을 개선해야 개인연금 내 국내 ETF 투자가 활성화되고, 자본시장의 내실 있는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ETF 선택 시 투자자가 반드시 확인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가?
세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지수의 구성 방식이다. 동일가중인지, 시가총액가중인지, 세부 산업 커버리지가 어디까지인지 확인해야 한다. 둘째, 상위 10개 종목과 비중을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 어떤 기업이 얼마나 담겨 있는지를 알아야 리스크를 평가할 수 있다. 셋째, 유동성과 괴리율이다. 거래대금이 충분히 유지되고, LP(유동성공급자)의 호가가 활발히 들어오는지를 확인해야 ETF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운용사 홈페이지의 PDF(일별 보유내역)나 코스콤의 'ETF 체크'만 봐도 대부분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연령대별 투자 자산배분 전략을 조언한다면?
자산 축적기(20~30대)는 위험자산 비중을 70~80%까지 높여도 된다. 다만 채권과 주식의 비율을 3:7 정도로 섞고, 위험자산 내부에서도 절반은 S&P500·나스닥 등 대표지수를, 나머지는 고성장 테마형 ETF에 배분하는 것을 권한다. 대표지수에서 발생하는 월배당을 변동성이 높은 자산에 재투자하면, 시간 분산 효과를 자동으로 얻을 수 있다. 반대로 50~70대의 인출기에는 혼합형 ETF 비중을 늘려 변동성을 줄이는 전략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S&P500과 미국 국채를 5:5로 구성한 혼합형 ETF들이 좋은 대안이 되고 있다.
-가상자산 영역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 어떻게 준비 중인지?
두 축으로 준비하고 있다. 첫째는 직접 가상자산 투자에 어려움을 느끼는 투자자를 위한 간접투자 솔루션이다. 변동성을 완화하고 제도권에서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하고 있다. 둘째는 가상자산이 촉발할 산업 변화에 투자하는 ETF 테마화이다. 스테이블코인, 블록체인 인프라, 온·오프램프 등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낼 기술과 기업을 선별해 투자자들이 합법적·효율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려 한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은 무엇인지?
한마디로 요약하면 '소통'이다. ETF 사업본부에는 운용, 상품전략, 마케팅 등 역할이 다른 인력들이 모여 있다. 각 부서가 다른 시각으로 시장을 바라보지만, '결국 하나의 결론(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각 기능이 가진 인사이트를 모아 토론하고, 그 과정을 효율화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의견을 조율하고 시너지를 만드는 일이 결국 상품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미·중 패권 경쟁 시대, 앞으로 투자자들이 주목해야 할 핵심 테마는 무엇인지?
미국은 정부 주도의 전략 육성 산업인 양자, SMR, 드론·방산, 사이버보안, AI 의료, 인프라가 핵심이다. 이 산업들은 앞으로 10년간 미국의 기술 주도권을 결정지을 분야들이다. 반면 중국은 수출 제한과 무역압박 속에서 내수 소비 진작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이른바 '신(新)소비' 산업, 즉 중국 MZ세대의 캐릭터·콘텐츠·IP 소비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는 '코리아 레벨업'이 주요 키워드다. 주주환원 강화, 배당 선진화, 공급망 재편의 수혜를 받는 조선·원전 산업 등은 여전히 유효한 테마다. 시장은 구조적으로 바뀌고 있다.
-마지막으로 ETF 투자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ETF는 분명 효율적인 투자 수단이지만 만능은 아니다. 브랜드나 유행에 기대기보다, 상품의 구조와 운용방식을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지수를 추종하는지, 어떤 종목을 담고 있는지, 거래 환경이 어떤지를 스스로 점검하는 습관이 장기적인 성과를 좌우한다. 결국 ETF의 본질은 '선택의 합리화'다. 스스로의 투자 성향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ETF를 고를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효율이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