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이 사람은 누구?'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제1별관 대법정에서 LG가(家) 맏사위 윤관 블루런벤처스(BRV) 대표가 123억원대 종합소득세 부과에 불복해 강남세무서장을 상대로 제기한 종합소득세 부과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의 항소심 1차 변론기일이 열렸다. 해당 재판에서는 1심 당시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 이목을 끌었다. 그는 'Vivian Koo(비비안 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윤관 대표) 측에 이 인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현재까지는 의문의 여성이다. 재판부가 "'비비안 구'는 누구인가" 묻고, 피고(강남세무서) 측이 "원고 측에서 밝혀야 한다"고 했음에도, 윤관 대표와의 관계는 추가로 언급되지 않았다. 윤관 대표 측이 "다음에 말씀드리는 게 효율적일 것 같다"며 답변을 미룬 상태다.
◆ BRV케이만 지분 60% '윤관→비비안 구'
'비비안 구'는 누구일까. 이날 항소심 재판부의 발언과 1심 판결 내용 등을 종합하면, '비비안 구'는 윤관 대표로부터 지분을 넘겨받은 인물이다. 구체적으로 2012년 BRV케이만 설립 당시 윤관 대표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2013년 지분 60%가 BRV홍콩의 한 직원에게 양도됐고, 2015년 다시 '비비안 구'에게 이 지분이 넘어온 것이다. 이후 BRV케이만의 지분율은 윤관 대표 20%, 윤관 대표의 친누나 20%, '비비안 구' 60%로 바뀌었다.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BRV케이만은 자회사 BRV홍콩과 BRV홍콩의 자회사 BRV코리아를 통해 BRV펀드를 관리·운영한다. 이러한 BRV케이만의 지분 60%를 넘겨받았다면 윤관 대표와 긴밀한 관계이거나, 투자 사업적으로 영향력이 큰 인물로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비비안 구'가 본명인지, 나이와 국적은 어떠한지 등 명확한 신상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비비안 '구(Koo)'로 불린다는 점에서 아내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혹은 측근일 것으로 예상할 순 있지만, 이마저도 불분명한 정보로 파악된다.
앞서 윤관 대표는 주주명부, 각종 신고서 등에 '윤최관', '윤관최' 등 여러 이름을 사용, 자신의 본명을 숨기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행보를 봤을 때 '비비안 구' 또한 본명을 드러내지 않기 위한 윤관 대표 측 누군가의 가명일 것이란 추측도 제기된다. 윤관 대표는 과거 위조 서류로 과테말라 국적을 취득하고 병역 의무를 면탈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 세금 불복 재판서 '비비안 구' 등장 배경은
그렇다면 '비비안 구'가 재판 도중 갑자기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항소심 재판부는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국조법)에서 정하고 있는 특수관계의 인정 여부' 등을 원고가 항소심에서 다투고자 한다"며 '비비안 구'를 언급했다. 이를 고려하면 윤관 대표 측은 항소심에서 국조법상 과세 요건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조법상 특정외국법인 유보소득 배당간주 규정에 따라 과세하기 위해선 윤관 대표가 BRV케이만 지분 50% 이상 보유해야 한다. '비비안 구'를 제외하고 자신과 누나 지분을 더하면 40%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펼칠 전망이다.
당초 세무당국은 '비비안 구' 지분 역시 실질적으로 윤관 대표가 지배하고 있다고 보고, 윤관 대표가 2016~2020년 국내에서 벌어들인 배당 소득 221억원에 대해 종합소득세 123억원을 과세했다. 실제로 'BRV펀드 관련 회사들의 실질적 지배자는 윤관 대표'라는 명제는 윤관 대표가 불복 심판을 청구했을 당시 조세심판원의 판단, 종합소득세 부과 처분 취소 청구 소송 1심 판결 등에서 흔들림 없이 유지됐다.
윤관 대표 측이 1심을 포함해 그간 다투지 않았던 BRV케이만 지분율 문제를 쟁점화하려는 것은 1심 때와 같이 거주자성 여부로만 대응하기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읽힌다. 앞서 윤관 대표 측은 1심에서 자신이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외국인이며, 국내 거주자도 아니라 세금을 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가 완패했다. 윤관 대표는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의 조세 전문 변호사들과 함께 소송에 임했으나, 1심에서 패소한 뒤 법무법인 남산으로 변호인단을 재편했다.
소득세법상 윤관 대표를 국내 거주자로 볼지 여부는 항소심에서도 주요 쟁점이다. 그러나 구연경 대표와 자녀들이 있는 국내에 윤관 대표도 항구적인 주거를 두고 있다고 봐야 하고, 국내 투자 사업 등 인적·경제적으로 밀접하게 관련된 중대한 이해관계의 중심지 역시 국내로 봐야 한다는 원심 판단을 뒤집기엔 역부족일 것이라는 게 법조계 안팎의 관측이다. 윤관 대표 측은 항소심 1차 변론기일에서 국내 거주자성과 관련해 "윤관 대표는 가족들과 생계를 같이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펼쳤으나, 재판부로부터 "별거했다는 말이냐.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 '윤관·비비안 구' 무슨 관계? 확인 절차 필요
추후 재판에서 '비비안 구'는 거듭 언급될 가능성이 크다. 1심을 통해 윤관 대표의 BRV 내 지배력은 지속해서 확인됐고, 이에 대해 그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윤관 대표 측이 '윤관 대표 지분은 40%(누나 지분 포함)에 불과해 과세 요건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뒤늦게 주장하려면 나머지 60%에 대한 설명도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윤관 대표 측이 '비비안 구'의 신원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밝힐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만약 윤관 대표의 가족이 아닌 사람으로 특정될 경우 '비비안 구'와 윤관 대표의 관계, 지분 양도 경위와 정산 문제, 지분 양도 이후 BRV 관련 법인 내 의사결정 및 보고 체계 등 종합적인 내용을 정확히 따져 보는 절차를 밟게 될 전망이다.
앞서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가 다투고자 하는 (BRV케이만과의 특수관계 인정 여부) 부분은 피고가 어떻게 (확인) 하려야 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며 "원고 스스로 ('비비안 구'에 대해) 밝혀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rocky@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