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정산 기자] 카드업계가 '영업통' 출신 CEO를 전면에 내세우며 상업자표시신용카드(PLCC) 시장이 재편되고 있다. 수년간 이어온 카드사와 제휴사 간 관계가 잇따라 종료되고, 새로운 동맹이 속속 등장하면서다. 혜택 경쟁이 한층 강화되며 "새 PLCC를 눈여겨보라"는 조언이 나온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5일 '스타벅스 현대카드' 발급이 중단됐다. 2020년부터 6년간 이어온 현대카드와 스타벅스의 동행이 막을 내린 것이다. 새로운 파트너는 삼성카드다. 지난달 출시된 '스타벅스 삼성카드'는 연회비 3만원으로 동일하지만 별 적립 구조를 대폭 개선했다. 기존 3만원 이용 시 별 1개를 줬던 것을 1만원당 1개로 바꿔, 적립 효율을 세 배 높였다.
신한카드는 최근 우아한형제들과 손잡고 '배민 밥친구 카드'를 선보였다. 배달의민족 PLCC는 현대카드 단독 상품이었지만, 새로운 제휴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연회비는 기존보다 최대 5000원 높지만, 주요 혜택은 '3% 적립'에서 '5% 할인'으로 강화됐으며, 배민 외 가맹점에서도 월 최대 1만원까지 1%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전용 혜택에 범용성까지 탑재한 셈이다.
새 PLCC들이 경쟁적으로 혜택을 높이는 이유는 단순하다. 신규 고객은 물론 기존 가입자까지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제휴사는 흥행이 검증된 상품을 토대로 더 나은 조건을 요구할 수 있고, 카드사 역시 브랜드 인지도를 활용해 신규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스타벅스와 배민을 시작으로 PLCC 시장의 지각변동이 예고되는 이유다.
제휴를 잃은 카드사 입장에서도 손해만은 아니다. 동일한 혜택을 장기간 유지할수록 마케팅 비용과 수익 배분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새로운 제휴를 통해 시장을 넓히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분석이다. 결과적으로 새 PLCC 제휴는 카드사·제휴사·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3자 선순환 구조'로 평가된다.
한 PLCC 제휴처 관계자는 "마케팅과 수익 등을 계약에 따라 배분하는 만큼 더 나은 조건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카드사와 협업을 지속할 이유는 없다"라며 "차라리 지출을 늘리더라도 새로운 제휴처와 협업하고 확실한 이익을 얻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했다.
올해 PLCC 시장이 급변하는 배경에는 '영업통' 대표들의 주문이 자리 잡은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새로운 제휴처를 발굴한 신한카드는 지난 1월 박창훈 대표가 '파격승진'하면서 이른 시기에 대표직을 수행하고 있다. 박 대표는 DNA사업추진단과 코드9 추진팀을 총괄하며, 데이터 사업 초기 단계에서 영업 확대를 통해 성장 동력을 확보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삼성카드 김이태 사장도 대표적인 영업통이다. 삼성벤처투자 대표 시절 9조원 규모 해외펀드에 180억원을 출자하는 등 공격적 투자로 주목받았다. 올해 상반기 삼성카드의 당기순이익은 3356억원으로 전년 대비 7.47% 감소했지만, 카드업계 평균 손익 감소율(18.3%)을 크게 웃도는 성과를 거뒀다.
신한카드를 제치고 '업계 1위'를 차지한 것도 가시적인 성과다. 그간 신한카드와 삼성카드의 순이익은 점진적으로 격차를 줄였지만 1년만에 상반기 기준 1000억원에 가까운 격차를 벌린 것이다. 그러면서도 연체율 1.07%로 업계 최상위권 수준의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PLCC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하나카드다. 지난해 새마을금고와 업무협약을 맺고 첫 PLCC를 내놨으나 반응은 미미했다. 그러나 성영수 대표 취임 이후 선보인 'MG+S카드'가 출시 3개월 만에 조기 단종될 만큼 흥행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성 대표는 금융권에서 영업통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나은행에서 외환사업부장, 영업1부장, 경기영업본부장, 기업그룹장 등을 거치며 영업에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또한 성 대표 직전 하나카드 지휘봉을 잡았던 이호성 하나은행장 역시 전형적인 '영업맨'으로, 새마을금고와의 업무협약을 성사시킨 주역이다.
한동안 자사 PLCC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우량 제휴처를 확보하려는 카드사 간 경쟁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특히 수익성 악화와 조달 부담 등 업황 부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마케팅 비용을 효율적으로 분배할 수 있는 PLCC가 '비용 절감'과 '영업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전략 자리 잡을 예정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PLCC는 빠르게 고객을 유입하고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이다"라며 "상대적으로 사업을 다채롭게 펼칠 수 있는 중상위권 카드사를 중심으로 제휴처 확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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