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선영 기자] 국제 금값이 사상 처음 온스당 4000달러를 넘어서며 열풍이 거세다. 국내에선 금 한 돈(3.75g) 가격이 84만원을 웃돌고 골드뱅킹 잔액이 1조5000억원을 돌파하는 등 '지금 아니면 못 산다'는 심리가 들끓고 있다. 그러나 실물 공급 차질과 국내 프리미엄(국제시세와의 괴리) 확대로 인한 가격 왜곡, 단기 조정 가능성 등 경고음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글로벌 금시장은 이달 들어 기록을 연일 새로 쓰고 있다. 금 국제가는 지난 8일 처음 4000달러를 돌파한 뒤 14일(현지시간) 장중 4179달러까지 치솟으며 또 한 차례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미·중 통상 긴장 재격화와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연내 추가 인하 기대, 미 정부 셧다운 장기화 등 불확실성이 겹치며 안전자산 선호가 급증한 영향이다.
최근 미국 증시 변동성이 커지는 점도 투자자들이 금과 은 투자로 쏠리게 만들고 있다는 해석이다. 같은 날 은(銀)도 사상 최고를 경신했다. 은값은 온스당 52.5070달러를 기록하며 1980년 미국의 은파동 사태 당시 기록한 고점을 갈아치웠다.
국내 금값 역시 가파르게 뛰고 있다. 이날 오전 9시 10분 기준 한국거래소(KRX) 금 시장에서 순금(99.99%) 1그램 시세는 22만5410원으로 전날(21만9900원) 대비 2.51%(5510원) 오른 가격을 보였다. 한 돈(3.75g) 가격으로는 84만5700원이다.
은행권 골드뱅킹 잔액은 1조5000억원을 돌파했다.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은행 등 3곳의 골드뱅킹 잔액은 총 1조5130억원으로 집계됐다. KB국민·신한은 9일 기준, 우리은행은 2일 기준 수치다. 지난해 말(7822억원)과 비교하면 두 배가량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다.
은행권의 금 실물 판매도 늘었다. 올해 1~9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골드바 판매액은 4505억원으로, 지난해 전체 판매액(1654억원)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일부 영업일에는 골드바 판매액이 일평균 60억~70억원대로 뛴 것으로 집계된다.
공급 측면에선 '품귀' 조짐이 뚜렷하다. 한국조폐공사는 지난 1일부터 연말까지 은행권에 골드바 전 규격 납품을 중단했고, 한국금거래소도 이달 20일부터 1㎏ 실버바 공급을 일시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은행 창구·몰에서는 골드바·실버바 품절 공지가 잇따르고 있다.
가격 왜곡에 대한 경계도 커진다. 최근 국내 금 가격은 국제시세 대비 '김치 프리미엄'이 재확대돼 9월 말 12% 수준까지 치솟았다가 지난 10일 기준 8.8%로 여전히 높은 상태다. 프리미엄이 꺼질 때 단기간 급락 위험이 커진다는 점에서 초심자 피해 우려가 제기된다.
전망은 엇갈린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2026년 금 가격 전망을 온스당 5000달러로 상향했지만, 단기 과열 국면에선 조정 가능성도 경고했다. 글로벌 매크로 불확실성이 유지되는 한 '상승 추세 속 변동성 확대'가 기본 시나리오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헤지펀드 업체 시타델의 켄 그리핀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주 뉴욕에서 개최된 시타델 증권 컨퍼런스를 통해 "투자자들이 금뿐만 아니라 비트코인과 같은 다른 달러 대체 자산으로 몰아 넣고 있다. 믿기 힘들 정도"라며 "금을 달러가 과거 그랬던 것과 같은 '피난처 자산'으로 보는 것인데 정말 우려스럽다"고 블룸버그통신에 전했다.
헤레우스의 귀금속 분석가들도 최근 시장 업데이트 보고서를 통해 "금, 은, 백금, 팔라듐 등 모든 귀금속이 주요 기술적 지표로 인해 심각한 과매수 영역에 진입했다"며 시장에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반면 금값 강세 기조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캐나다 채굴기업 휘턴 프레셔스 메탈스의 대표 랜디 스몰우드는 "내년에 금값이 5000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며 "10년 안에 두 배가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국내 전문가들 역시 금값 강세 기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몇 차례 숨고르기 국면이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NH투자증권은 지난달 29일 보고서에서 향후 1년 금 가격 목표치를 온스당 4500달러로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실수요·투자자 유의점도 분명하다. 실물(골드바·코인)은 국내 프리미엄과 부가세, 매각 스프레드를 감안해야 한다. 품귀 국면에서의 '웃돈' 구매는 프리미엄 정상화 시 손실로 직결될 수 있다. 또 금 현물·선물·ETF 등 상품별 과세·환헤지·유동성 차이를 따져야 하며, 급등 직후 분할 매수·목표 비중 관리가 필수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은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글로벌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그 수요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최근 금값이 높은 가격 수준으로 오른만큼 변동성 확대 가능성도 존재하는 만큼 투자자들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국제 금가격과 원-달러 환율에 따라 가격이 변동되는 상품으로 최근 금가격과 환율의 변동성이 높아짐에 따라 가격 변동폭이 확대될 수 있다"며 "당행도 KB골드투자통장 위험등급을 3등급(다소높은위험)에서 2등급(높은위험)으로 변경하는 등 혹시 모를 리스크를 안내하며 투자를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