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재계 총수들이 올 추석도 바쁜 연휴를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 휴식을 취하면서도 평소와 다름없이 경영 구상에 나서야 하고,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경제인 행사 준비 상황도 확인해야 한다. 긴 연휴를 활용해 그간 점검하지 못했던 해외 사업장을 방문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3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올 추석 연휴 일정은 아직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 경우, 자택에 머무르며 경영 구상에 몰두한다고 볼 수 있지만, 해외 출장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게 재계 판단이다. 이는 이 회장이 그간 명절 글로벌 현장 경영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추석 연휴에는 유럽을 찾아 국제기능올림픽 선수단을 만났으며, 2023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이집트 등을 방문해 현지 사업장을 점검하고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올해 설 연휴에는 이례적으로 국내에 머물렀다. 그러나 지난 7월 10여년 동안 발목을 잡은 사법리스크가 해소됐다는 점에서 명절 현장 경영이 재개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해외 출장 일정이 정해진다면 긴 연휴를 고려했을 때 행선지가 한곳에 국한되진 않을 전망이다. 이 회장이 APEC 행사를 측면 지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제로 해외 출장에 나선다면 여러 국가의 많은 인사를 만나는 방식의 일정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재계 총수 가운데 가장 바쁜 연휴를 보낼 가능성이 크다. 마찬가지로 APEC 행사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적극 지원하고 있다. 심지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APEC 경제인 행사인 최고경영자(CEO) 서밋을 준비하고 있다. 연휴 동안 직접 현장을 찾진 않더라도, 준비 상황을 수시로 체크해야 하는 책임자 입장이다. 앞서 최 회장은 한 달에도 몇 차례씩 경주를 찾아 APEC 행사 현장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 차원에서는 APEC CEO 서밋 공식 부대행사인 퓨처 테크 포럼을 계획하고 있다. 글로벌 리더들이 모여 국가 AI 생태계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다. 최 회장은 기조연설에 나서 아시아태평양 국가의 지속 가능 AI 생태계 마련을 위한 전략을 제안할 방침이다.
이 회장과 최 회장 등 재계 총수들이 글로벌 네트워크를 총동원한 노력으로, APEC에는 빅테크 수장이 대거 참석할 예정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샘 올트먼 오픈AI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팀 쿡 애플 CEO 등이 거론된다. 이 회장과 최 회장은 지난 1일 방한한 올트먼 CEO와 만나 오픈AI의 대규모 프로젝트 '스타게이트'에 고성능 메모리반도체를 공급하는 등의 협력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밖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예년처럼 연휴 기간에 휴식하면서 내년 경영 구상에 몰두할 것으로 예상된다. 관세 리스크로 인한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해 대응책 마련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김동관 부회장 등 가족들과 함께 별도 사업 일정 없이 휴식 및 경영 구상에 나설 것으로 점쳐진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역시 정중동 행보가 유력하다. 다만 인공지능전환(AX) 가속화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터라, 머릿속은 복잡할 전망이다. 앞서 구 회장은 추석 연휴 직전 중장기 경영 전략을 논의하는 사장단 회의를 열고 경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신속한 AX 전략 실행을 제시한 바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명절 때마다 한국·일본을 오가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올 추석에는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롯데 챔피언십 현장 방문차 하와이에 머무른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롯데 챔피언십은 통상 4월에 열렸으나, 지난해 처음으로 11월에 개최됐고, 올해는 지난해보다 한 달 앞당겨 진행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기업 관계자는 "시간을 쪼개 타이트한 일정을 소화하는 재계 총수가 명절 연휴라고 해서 휴식만 취하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지금과 같이 경영 불확실성이 커진 위기 상황일수록 더더욱 그렇다"며 "경영 구상은 물론, 평소 시간을 내지 못해 챙길 수 없었던 현안을 체크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한편, 재계 총수들은 정기 임원 인사, 조직 개편과 관련한 구체화 작업에도 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그룹이 지난달 26일 정기 인사를 단행한 가운데, 다른 기업의 인사 시점 역시 다소 앞당겨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당장 SK그룹이 이달 중 인사를 발표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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