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참사에도 불구하고 건설현장은 여전히 위험이 끊이지 않는다. 정부 규제 강화에도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제도는 있는데 현장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이 드러난다. 본지는 국회가 추진 중인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움직임과 업계의 민낯, 전문가들의 해법을 심층적으로 짚어본다. <편집자주>
[더팩트 | 공미나 기자] 정부가 포스코이앤씨의 근로자 사망사고를 시작으로 건설업계에 엄포를 놓은 뒤에도 대형 건설사 공사현장에서 잇따라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이는 정부의 강력 제재만으로는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방증이다. 전문가와 노동계는 "법과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 28만원→4만원…사고 부르는 불법 하도급·최저가 낙찰제
불법 하도급과 최저가 입찰 관행은 안전을 위협하는 핵심 원인으로 꼽힌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은 재하도급을 금지한다. 즉 건설공사는 '발주자-원도급-하도급-근로자'가 원칙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불법 하도급이 만연하다.
2021년 9명의 목숨을 앗아간 광주 학동 철거 건물 붕괴사고의 원인으로도 불법 하도급이 지목됐다. 당초 3.3(평)㎡당 28만원으로 책정된 철거 공사비는 불법 재하도급을 거치며 4만원으로 대폭 줄어든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중앙건축물사고조사위원회는 불법 재하도급 과정에서 공사비가 급격히 낮아지면서 해체계획서 검토가 부실했고, 실제 작업도 계획을 따르지 않았다고 밝혔다.
최저가 낙찰제는 불법 하도급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최저가 낙찰을 받은 원도급사는 낮은 금액으로 수주한 공사를 실제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보니, 비용을 줄이기 위해 여러 차례 하도급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공사비가 단계마다 깎이고, 결국 인력·자재·안전 관리비까지 줄어들어 사고 위험이 커진다.
이에 노동계가 요구하는 것은 불법 하도급 근절과 이를 위한 '최적가치 낙찰제'다. 전재희 전국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건설현장의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법 하도급 근절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최저가 낙찰제가 아닌 적정 공사 기간과 공사 비용을 보장하는 최적가치 낙찰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좋은 경영 방침이나 제도가 도입돼도 최저가 낙찰 관행과 불법 하도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건설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 인력은 고령화·외국인 증가…"변화 대응해야"
건설 인력의 고령화와 외국인 근로자 비중 확대도 안전 관리의 어려움을 키우는 요인이다. 고령 근로자는 체력과 인지 능력이 떨어지고, 외국인 근로자는 언어 장벽으로 소통에 제약이 따른다. 이로 인해 현장 관리가 복잡해지고 사고 위험도 높아지고 있다.
건설근로자공제회의 '2024년 건설근로자 종합생활 실태조사'에 따르면 건설 현장 근로자 연령은 평균 51.8세로 집계됐다. 50대가 34.4%로 비중이 가장 많았고, 60세 이상이 33.5%, 40대가 18.1%였다. 반면 30대는 8.9%, 20대 이하는 5.0%에 그쳤다. 전체 근로자 3명 중 2명은 50세가 넘는 고령층인 것이다. 특히 60세 이상의 비율은 4.3%포인트나 상승하며 처음으로 30%를 넘어섰다.
같은 조사에서 지난해 건설현장의 하루 평균 기능인력 구성비는 한국인 66.3%, 외국인 33.7%로 나타났다. 3명 중 1명은 외국인인 셈이다. 실제 건설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80% 이상이 ‘외국인 근로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답한 가운데, 외국인 근로자들과 의사소통 문제로 인해 불편을 겪고 있다는 심층 인터뷰도 있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 인력 고령화·외국인 비중 증가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현장 관리를 강화하면서도 청년, 여성, 등 다양한 인력의 유입 확대와 기술을 통한 인력의 대체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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