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출신 첫 수장 박상진…'부산 이전' 접고 정책금융 가속할까


노조 "대부분 수용" 새 성명, 이행 시한·방식 보완 과제
첨단산업·중소·전통산업 지원 구체화도 관심

한국산업은행 71년 만의 첫 내부 출신 수장 박상진 회장(오른쪽 위)이 오늘 취임식을 열고 공식 업무에 돌입했다. /더팩트 DB·금융위원회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한국산업은행 71년 만의 첫 내부 출신 수장 박상진 회장이 오늘 취임식을 열고 공식 업무에 들어갔다. 출근길에 그는 "(산은으로) 다시 돌아와 책임감이 막중하다"며 "걱정도 되지만 잘 열심히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노조는 새 성명에서 박 회장이 요구의 대부분을 수용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이행 시한·방식의 보완을 요구했다. 취임사와 별도의 전 직원 메시지에선 부산 이전 논의 과정의 상처를 위로하고 열린 소통을 약속했다.

박상진 회장은 1990년 산은에 입행 뒤 법무·준법·구조조정 보직을 거친 정책금융 베테랑이다. 지난 9일 금융위원장 제청과 대통령 임명 절차로 내정이 공식화되며 '첫 내부 출신' 회장이라는 상징성이 부각됐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만큼, 무엇을 먼저 풀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본점으로 출근하며 그는 "다시 돌아와 책임감이 막중하다. 잘 열심히 하겠다"고 짧게 밝혔다. 부산 이전 관련 질문에는 "취임사에서 이야기하겠다"고 답했다.

관심은 부산 본점 이전 문제를 어떻게 마무리하느냐다. 그동안 노조는 '부산 이전 완전 철폐'를 가장 앞에 놓고 강하게 요구해 왔다. 이날 나온 새 성명에서 노조는 "회장이 대부분 수용하겠다고 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핵심 쟁점인 부산 본점 이전의 최종 정리(철폐 공식화·파견 인력 처리·일정표), 노동이사제 등 거버넌스 개선의 도입 경로, 근로제도(유연근무 등) 적용 시점은 언제, 어떻게를 더 치밀하게 못 박아달라고 주문했다. 결국 방향은 합의, 방법과 시한이 남았다는 게 노조의 요지다.

박 회장은 취임사에서 산업은행의 모든 역량을 △첨단전략산업 지원을 통한 생산적 금융 전환 △중소·벤처 육성과 지방산업 체질 개선 △전통산업의 생산성 제고와 산업구조 재편에 집중하자고 제시했다. 임직원에게는 주인의식·청렴·열린 소통을 주문했고, 국내를 넘어 글로벌과 경쟁하는 'K-Development Bank'가 되자고 강조했다. 또한 취임사와 별개로 전 직원 메시지를 보내 과거 이전 논의 과정에서 직원들이 겪은 상처를 위로하고 경청·소통을 약속했다.

박 회장은 "30년간 한국산업은행과 함께해 온 사람으로서, 중대한 소임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한국산업은행 전 구성원과 함께 대한민국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15일 박상진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30년간 한국산업은행과 함께해 온 사람으로서, 중대한 소임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한국산업은행 전 구성원과 함께 대한민국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산업은행

이제 실행력이 관건이다. 첨단전략산업 투자(반도체·AI·배터리 등)는 규모 못지않게 심사 기준·리스크 분담·사후관리 표준을 빨리 정비하는 게 승부처로 꼽힌다.

업계에선 그가 정부가 추진 중인 '석유화학 사업재편' 관련 전문성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한다. AI·반도체 150조원 펀드 관련 산은에 설치하는 '첨단전략산업기금' 75조원이 큰 축으로 구성되는 등 첨단산업 육성 역할도 맡게 된다.

중소기업과 지역 기업 지원은 금리나 만기 같은 조건만 볼 게 아니라, 현장 자문과 거래 관계까지 함께 챙겨야 체감이 커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존 산업의 재편은 '도울 기업은 돕고, 구조를 바꿀 곳은 바꾼다'는 원칙을 분명히 해야 잡음이 줄어든다는 해석이다.

산은이 쥐고 있는 굵직한 과제도 있다. HMM 매각은 새 주인을 찾는 과정에서 가격·시기·방식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KDB생명은 자본 보강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어 상품·영업·위험관리를 함께 손보는 계획을 내놔야 시장의 의심을 줄일 수 있다. 노사 갈등이 정리되면 이런 과제의 속도도 자연스럽게 붙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대로 이행 시한과 절차가 모호하면 다시 불확실성이 커진다.

금융권 관계자는 "큰 틀에서 합의가 이뤄진 만큼 이제는 갈등 비용을 줄이는 속도전"이라며 "산업은행 부산 이전 문제의 최종 방향·시한을 못 박고, 첨단·중소·전통산업 지원의 심사·사후관리 원칙을 함께 내면 노사와 시장이 동시에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박 회장은 노조와의 면담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업무에 나선다.

김현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산업은행지부 위원장은 "박 회장이 내부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며 "오히려 누구보다 한국산업은행의 과거와 현재를 잘 알기에, 직원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고 조직을 지키는 데 소신 있게 행동할 것을 더욱 강하게 요구한다"고 언급했다.

seonyeo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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