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맡겼건만"…KB신탁, 주먹구구식 위탁에 내부거래 의혹까지


목동14단지 전자동의 맡은 '레디포스트' 논란 일파만파
10억짜리 비교 견적서 수정도 '순식간'

KB부동산신탁이 목동신시가지14단지 신탁업자 지정 과정에서 일부 조합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KB부동산신탁 홈페이지 갈무리

[더팩트|윤정원 기자] KB부동산신탁이 목동 재건축 현장에서 주먹구구식 위탁으로 일부 조합원들의 불평을 사고 있다. 별도의 비교 견적도 없이 전자동의 서비스 업체를 선정했는데, 해당 업체는 KB 계열사 KB인베스트먼트가 투자한 곳으로 확인됐다.

◆ '10억짜리 비교 견적서' 손바닥 뒤집듯…신뢰 흔들려

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KB부동산신탁은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14단지에서 신탁업자 지정을 추진 중이다. 추진준비위원회(재준위)는 신탁업자 지정 동의서를 받기 위해 프롭테크 기업 레디포스트(대표 곽세병)의 총회원스탑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현시점 전자동의 온라인 서비스를 운용 가능한 기업은 레디포스트를 비롯해 △이제이엠컴퍼니(우리가) △한국프로테크(얼마집) 등 국내에 3곳뿐이다.

그러나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KB부동산신탁이 레디포스트를 선정한 것이 악수라는 불만이 새어 나오고 있다. 정밀한 분석 없이 업체를 선정해 단지가 구설에 오르는 것 아니냐는 푸념이다.

<더팩트> 취재 결과 레디포스트 측에서 손바닥 뒤집듯 전자동의 견적 조항을 바꾼 정황도 포착됐다. 레디포스트는 목동14단지 수주 과정에서 타 업체들에 '10억원짜리 비교 견적서'를 요청했으나 수 차례 거절당했다. 곽세병 대표가 직접 타업체의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비교 견적을 요청하기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레디포스트가 10억원에 맞춘 견적서를 보내와 비교견적안을 달라 했지만, OS(홍보도우미) 비용이 포함돼 불법 소지가 있어 거절했다"며 "이후 OS 비용을 빼고도 10억원을 유지한 견적서를 다시 보내왔는데 이것 또한 말이 안 돼 거절했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본래 5000만원 이상이면 비교견적을 받고 지명경쟁 내지 입찰경쟁을 하는 것이 옳다"는 설명도 덧댔다. 동의서 징구 업체 선정을 신탁 자체 발주로 돌리면서 해당 과정이 생략됐다는 이야기다.

레디포스트는 10억원으로 맞춘 비교 견적서를 여타 업체들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견적서에는 위법 소지가 있는 OS(홍보 도우미) 비용이 포함돼 있다. /제보자 제공

◆ 업계 시세 수천만원 수준인데…레디포스트, 청구 비용만 9억?

일각에서는 레디포스트가 실제 KB부동산신탁에 동의서 청구 비용으로 9억원이라는 거액을 요구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이는 지난해 레디포스트 매출(13억원)의 약 3분의 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업체들에 의하면 통상적으로 목동14단지 규모(3100세대)의 단지에서 전자동의에 드는 금액은 5000만원 이내다. 대개 세대당 가격이 5000~1만5000원으로 매겨지며, 이를 토대로 총견적이 나오는 구조다.

레디포스트는 지난해 서초 진흥아파트(723세대) 전자총회를 450만원에 진행한 바 있다. 세대당 6224원꼴로, 목동14단지의 세대당 비용(27만6000여원 추산)과 비교하면 무려 44배 차이 난다. 서초진흥은 온라인총회, 스마트출석, 전자투표까지 포함한 금액이므로, 세대당 금액으로 환산하면 가격 차는 더욱 커진다. '전자총회'와 '전자동의'라는 차이가 있다고 전제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격차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곽세병 대표는 '전자동의 비용 산출 과정이 궁금하다'는 <더팩트> 기자의 질의에 "당사가 업계 최초로 사업 개시를 받았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타사는 사업 개시 직전이거나 받은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다. (타사의) 레퍼런스(참고자료)는 아예 없었다"며 타사와의 비교가 불가함을 피력했다. 아울러 동의서 청구 비용에 대해서는 "경쟁 회사들이 있는데 비용이 오픈되는 부분이다 보니 정확한 액수를 말씀드릴 수 없다. 삼성전자에게 원가를 알려달라는 격"이라고 답했다.

KB부동산신탁은 줄곧 "9억원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KB신탁 관계자는 "계약금액이 9억원은 아니지만, 말씀드릴 수는 없다. (전자동의 비용은) 업계에서나, 타 신탁사들에 비해서 저렴하면 저렴했지 많은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업체 선정 과정에 대해 KB부동산신탁 관계자는 "레디포스트가 타 업체들에 뭘 요구를 했는지는 저희가 알 수 없는 부분"이라면서 "레디포스트는 최근 서울시에 입찰하면 계속해 압도적인 1등이다. 저희가 봐도 크게 문제가 없다고 봤다. 내부 기준과 절차에 따라서 심의를 하고, 비용을 책정해 (계약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는 "타 전자동의 업체들에게 물어봐서 비용의 적합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맞지 않는 듯하다"라고 부연했다.

앞서 목동 단지 위원장들에게 레디포스트를 적극 추천했다고 전해진 목동14단지 재준위원장 역시 가격에 관해서는 모른다는 반응이다. 이상용 목동14단지 재준위원장은 "9억원은 안 들어간다. 무슨 그렇게 많이 들어가겠냐. 지정 개발자 지정에 관한 비용은 KB부동산신탁에서 부담하기로 해서 알 수가 없다"라고 답변했다.

레디포스트 홍보자료에 따르면 주요 협력사에는 KB부동산신탁이, 투자사에는 KB인베스트먼트가 나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레디포스트 홍보자료 갈무리

논란이 커지는 배경에는 레디포스트가 KB인베스트먼트의 투자사라는 점이 있다. 지난 2023년 2월 레디포스트가 투자 유치한 30억원 규모 프리시리즈A 가운데 KB인베스트먼트가 10억원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시리즈A에는 △KB인베스트먼트(10억원) △이에스인베스터(10억원) △신용보증기금(10억원) 등이 투자했다.

이에 KB신탁이 계열사 투자사를 밀어준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으나 KB신탁 관계자는 "KB인베스트먼트가 레디포스트에 투자한 사실을 몰랐고, 연결고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KB신탁과 KB인베스트먼트와의 연결을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곽 대표 또한 "KB인베스트는 당사의 비전을 보고 투자를 한 것이다. 전혀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목동14단지 재준위는 9일 기준 신탁 동의율 70%를 모두 달성, 양천구청에 KB부동산신탁의 사업 시행자 지정을 신청을 앞두고 있다. 다만, 체계 없는 하도급 업체를 선정한 데 대한 KB신탁의 책임소재 논란은 면하기 어렵게 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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