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후 첫 공식 일정으로 은행장들을 만나 금융소비자 보호와 내부통제 강화, 생산적 금융 확대를 강하게 주문했다. 은행권이 담보·보증 위주 영업에 치중해 '손쉬운 이자장사'라는 사회적 비판을 받고 있다는 점도 직접 언급했다.
이 원장은 28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20개 국내 은행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 이날 간담회는 이 원장이 지난 14일 취임 후 2주 만에 갖는 공식 행사다. 이 원장은 이번 은행장 간담회를 비롯해 업권별 릴레이 간담회를 지속하며 금감원의 감독 방향을 알릴 예정이다.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는 국내 20개 은행장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오후 2시 29분께 정진완 우리은행장이 모습을 보였고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호성 하나은행장, 최우형 케이뱅크 행장, 이환주 국민은행장, 황병우 iM뱅크 은행장, 강태영 농협은행장, 김성태 기업은행장,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 등이 차례로 입장했다. 밝은 표정으로 취재진 인사에 미소를 짓는 행장도 있었지만, 따로 질문은 받지 않고 빠르게 이동했다.
이찬진 원장이 20개 은행장과 만나는 첫 행사인 만큼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기념촬영에 나선 은행장들은 다소 진지한 모습을 보였고, 새 금감원장과 첫 상견레 자리인 만큼 긴장감이 맴돌았다.
이 원장은 이날 모두발언을 통해 "앞으로 금융 감독·검사의 모든 업무 추진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며 "앞서 취임사에서도 금융소비자 보호를 대폭 강화하고 금융범죄를 엄정 대응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흔들리지 않는 대원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은행권도 책임있는 영업문화를 정착시켜 달라"며 "은행이 건전성·안정적인 수익을 바탕으로 지속 성장하기 위해선 소비자라는 동반자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설명했다.이어 "더 이상 ELS 불완전판매와 같은 대규모 소비자 침해 사례는 없어야 한다"며 "은행 스스로 업무 전반에 걸친 프로세스를 점검하고, 소비자보호 강화를 위한 책무구조도 운영, 고난도 투자상품 판매 관행 개선 등으로 '사전예방적 소비자 보호 체계'를 확립해야한다"고 당부했다.
또 "금감원도 책무구조도 현장 점검 등을 통해 소비자 권익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고 대규모 소비자 피해를 유발하는 행위에 대해선 '든든한 파수꾼'으로서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부통제 강화도 핵심 메시지였다. 이 원장은 "개인정보 유출이나 직원 횡령 같은 금융사고는 자물쇠가 깨진 금고와 다르지 않다"며 "비용 절감을 이유로 허술한 내부통제를 방치한다면 국민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사고 개연성이 높은 업무를 중심으로 내부통제를 근본적으로 강화하고 AI 등을 활용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생산적 금융 확대에 대해서는 "은행이 담보와 보증상품 위주의 영업으로 손쉬운 이자 수익에 치중하고 있다는 사회적 비판을 받고 있다"며 "건전성 규제로 확보한 여유 자본이 생산적 금융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각별히 신경 써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자금 공급을 통해 국가 경제의 성장을 지원하는 것은 은행의 건전성과 수익성으로 환류돼 상호순환적 성장을 이루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는 9월 종료되는 코로나19 피해 차주의 만기연장에 대해서는 "은행별 마련한 관리 방안을 충실히 이행하고 원활한 만기연장이나 이자 부담이 늘지 않도록 살펴봐달라"며 "금감원도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한 금융지원 실태를 점검하고 필요시 관련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가계부채 관리에 대해선 "은행 자체적으로 DSR 규제 등 상환능력 중심 대출 심사 및 가계부채 총량 관리에 힘써달라"며 "6.27 대책에 대해서도 규제 우회가 발생하지 않도록 엄격히 관리해 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AI 기술 등을 활용한 초개인화 금융서비스를 통해 금융 접근성을 제고하고, ESG 금융 등 해외 진출을 통해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해야 한다"며 "금감원도 혁신금융서비스, 규제완화 등을 통해 은행 산업이 한국 경제 핵심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은 '은행 건전성 규제 개선TF'에서 논의 중인 자본 규제 완화 및 정책자금 활성화 등 감독 차원의 지원 확대를 요청했다. 금융소비자보호에 대한 법률(금소법) 위반에 따른 금전제재 중복 부과(과징금·과태료)와 관련한 은행권 우려 사항도 전달했다.
조 회장은 "금융 소비자 보호를 대폭 강화하고 내부통제체계를 고도화하는 한편 신성장 산업에 대한 자금 공급 확대를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