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에서 변호사로, 금감원 리더십 교체…이찬진호 풀어야할 숙제는


법조·시민사회 경력의 '조정형' 리더십 시험대
부동산 PF·가계부채·소비자보호·지배구조, 금융위와의 조율 등 과제 산적

신임 금융감독원장에 이찬진 변호사가 발탁되면서 금감원 리더십의 결이 바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뉴시스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신임 금융감독원장에 이찬진 변호사가 발탁되면서 금감원 리더십의 결이 바뀌고 있다. 전임 이복현 전 원장이 검사 출신 특유의 강한 드라이브로 시장을 압박했다면, 이 원장은 법조·시민사회 활동 경험을 토대로 조정과 합의에 무게를 둘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과의 사법연수원 동기 인연, 참여연대 활동 이력 등 정치·사회적 배경도 주목받고 있다. 그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정리, 가계부채 연착륙, 금융소비자 보호,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 등 주요 과제를 안고 있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원장은 지난 13일 내정 이후 임명 제청 절차를 마쳤다. 이 대통령의 연수원 18기 동기이자 오랜 친분이 있는 인물로, 금감원장 공석 장기화 끝에 법조인 출신이 바통을 이어받게 됐다. 업계에서는 검사에서 변호사로의 상징적 교체가 감독 스타일과 정책 우선순위 변화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이 원장은 변호사로서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 활동을 함께했고, 각종 공공 자문과 소송 대리를 맡아왔다. 금융권 실무·감독 경험은 '얇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법·규제 설계와 분쟁 해결 능력에는 기대가 실린다. 일각에선 금융 전문성 공백 논란을 제기하지만, 법과 원칙 중심의 균형형 리더십이 오히려 과열된 시장과 정책 갈등 국면에서 완충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반론도 공존한다.

취임 일성은 소비자 보호와 시장 신뢰 강화였다. 이 원장은 취임식에서 금융소비자보호처 기능을 확대하고 사전 예방 중심의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ELS(주가연계증권) 사태 등 대형 분쟁이 잇따른 점을 고려하면 예고된 행보로, 금융사의 내부통제와 판매책임 강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사후 제재 일변도를 벗어나 분쟁조정의 예측 가능성과 업계의 자율 시정을 병행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부동산 PF 문제 역시 과제다. 상반기 표면 지표는 다소 안정됐지만, 하반기 대규모 만기 도래와 공급 조정이 겹치며 '연장'에서 '정리'로의 전환이 본격 시험대에 오른다. 이 원장은 감독·검사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과제를 금융위·정책금융과의 정책 패키지로 풀어야 한다. 자본적정성 규율, 충당금·익스포저 관리, 시장형 정리 메커니즘을 조합해 연착륙 경로를 제시하지 못하면, 개별 금융회사 '눈치 보며 버티기'가 재현될 수 있다.

가계부채 관리 역시 시급하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커지는 국면에서 DSR 체계와 취약차주 보호의 균형을 다시 짜야 한다. 감독기관으로서 금감원은 은행권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의 현장 집행을 점검하고, 변동금리·만기구조 리스크가 높은 군에 대해 선제 리스크 점검과 채무조정 연계를 촘촘히 가동해야 한다. 동시에 예대금리차·NIM 방어 경쟁이 격화되는 하반기 금리·수수료 투명성 이슈가 재점화될 가능성도 있다.

지배구조·시장질서도 과제다. 주주권 강화와 경영 투명성 제고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금감원은 임원 선임·보수·내부통제 체계의 실효성을 들여다보되, 상법·자본시장법 등 입법 프레임은 금융위와 보폭을 맞춰야 한다. '감독과 정책'의 경계에서 메시지가 엇갈릴 경우 소송·불확실성 비용만 키울 수 있다. 이 원장이 법조인으로서 룰 메이킹과 룰 집행 간의 접점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오는 28일 20대 은행장 간담회를 시작으로 업권별 소통에 착수한다. /더팩트 DB

이 원장은 조직 운영에서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원장은 오는 28일 20대 은행장 간담회를 시작으로 업권별 소통에 착수한다. 금융권은 첫 메시지가 압박이 될지, 협업이 될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본다. 초기에는 소비자보호·검사 라인 재정비와 현안별 태스크포스(TF) 구성이 예상된다. 이 원장이 취임 후 첫 내부회의에서 "다음 주 놀랄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조직 쇄신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린다.

정치·사회적 배경도 변수다. 대통령 연수원 동기이자 변호인단 경력이 알려지면서 '실세 원장'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 그러나 정무적 조정 능력을 뒷받침하는 자산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관건은 사건별 판단에서의 독립성이다. 전임 체제의 성과와 논란을 학습해 원칙·투명·예측 가능성이라는 3대 요소를 정착시킨다면 정치화 논란을 억제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 원장의 초반 평가는 조정형 리더십의 실천력에 달려 있다. 금융위와의 역할 분담을 분명히 하면서 현장 집행의 일관성을 유지한다면 검사 출신에서 변호사 출신으로의 교체가 단순한 스타일 변화를 넘어 신뢰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시장은 이번 은행장 간담회에서 제시될 첫 메시지와 실행 로드맵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전임 체제가 강한 드라이브로 규율을 세웠다면, 이찬진 원장은 법률·조정 역량을 앞세워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쪽으로 무게를 둘 것으로 보인다"며 "감독과 정책의 경계에서 충돌이 생길 때 합의형 리더십이 작동하느냐가 초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초기 100일은 PF 정리 로드맵, 소비자보호 사전예방 매뉴얼, 분쟁조정 처리기한 공개, 금융위와의 기능 매트릭스 등으로 평가될 것"이라며 "시장이 원하는 건 강경함이 아니라 예측 가능성이고, 업계가 바라는 건 관용이 아니라 명확한 기준이다"라고 말했다.

seonyeo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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