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협상서 엇갈린 한화·HD현대 존재감…적극적 vs 정중동


미국 현지 전략 및 그룹 지배력 차이…경영 행보 영향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왼쪽)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한미 관세 협상 과정에서 상반된 존재감을 보였다. /각사 제공

[더팩트ㅣ최의종 기자] 한미 관세 협상 타결에 조선업이 지렛대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조선업계 대표 80년대생 오너 3세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1983년생)과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1982년생)의 행보가 엇갈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현지 사업 전략과 그룹 지배구조 등의 차이가 이번 협상 과정에서 두 인사의 존재감 차이를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HD한국조선해양과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사 빅3와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한미 조선 협력 대응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선 이후 조선 협력 필요성이 커지면서 꾸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달 31일 한미 관세 협상 타결에 한국 정부가 제시한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가 핵심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있다. 양국은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하고 이 가운데 1500억달러는 조선 협력에 활용하기로 했다.

김 부회장은 지난달 28일 관세 협상을 지원하고자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같은 달 29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관세 영향이 큰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도 같은 달 30일 미국으로 갔다.

이 가운데 존 펠란 미국 해군성 장관과 러셀 보트 백악관 예산관리국장 등 미국 정부 고위관계자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한화필리십야드(필리조선소)를 방문했다. 한화필리조선소가 한미 조선업 협력 교두보 역할을 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 뒤 한화오션으로 출범한 한화그룹과 자웅을 겨루는 HD현대그룹이 한미 관세 협상 정국에서 존재감 차이를 보인 점을 주목한다. 김 부회장은 협상 과정에 직접 미국으로 가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정 수석부회장은 국내에서 업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관세 협상 과정에 적극적인 김 부회장과 정중동 모습을 보인 정 수석부회장의 지배력 차이를 경영 행보와 연계하는 분석이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지난 3월 31일 보유하던 ㈜한화 지분 절반인 11.32%를 세 아들에 넘기면서 김 부회장 지분율은 4.91%에서 9.77%로 올랐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정부 주요 인사가 한화그룹 미국 한화필리십야드(필리조선소)를 방문했다. 왼쪽 두 번째부터 러셀 보트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국장, 존 펠란 미 해군성 장관,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한화그룹

김 부회장은 ㈜한화 지분 18.16%를 가진 한화에너지의 지분 50%도 보유하고 있다. 김 부회장이 실질적인 ㈜한화 최대 주주인 셈이다. 지배구조가 안정적인 만큼 경영 행보도 적극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화시스템과 한화오션을 통해 인수한 한화필리십야드 투자도 김 부회장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수석부회장이 보유한 HD현대 지분율은 약 6.12%다. HD현대 최대 주주는 정 수석부회장 부친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다. 지분율은 26.6%다. 경영 역시 권오갑 회장과 정 수석부회장 체제로 이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재선 전후로 한화와 HD현대 대미 전략도 차이를 보였다. 한화는 인수한 필리조선소 이름을 한화필리십야드로 바꾸며, 생산량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울러 미국에 조선소가 있는 호주 조선·방산업체 오스탈 지분 인수도 추진하며 현지화 전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 부회장이 ㈜한화를 통해 지배구조를 구축한 한화솔루션이 미국 시장에서 존재감을 보이는 점도 관전 요소다. 한화솔루션은 미국 주택용 에너지 사업에서 호조를 보이며 올해 2분기 호실적을 거뒀다. 미국은 태양광 사업에서도 한화가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시장인 셈이다.

반면 HD현대는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인 헌팅턴 잉걸스와 함정 건조 기술 협력 업무협약(MOU)을 맺으며, 기술적인 협력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헌팅턴 잉걸스가 보유한 잉걸스 조선소는 미국 대형 상륙함과 대형 경비함 전량을 건조하고 있다.

한화오션이 미국 해군 MRO(유지·보수·정비) 사업을 연이어 수주한 반면 HD현대가 아직 실적을 거두지 못한 것도 현지 사업에 대한 적극성의 차이가 만든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두 그룹의 전략 차이가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가 끝난 후(2029년 1월 20일) 대통령이 바뀌면 미국 행정부의 조선업 정책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

국내 조선사 빅3는 TF를 통해 마스가 프로젝트에서 구체적인 역할에 대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 관세 협상에서 조선 협력 카드가 중요한 역할을 한 만큼 조만간 세부적인 방안이 언급될 전망이다.

마스가 프로젝트 특성상 빅3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만큼 경쟁보다 '공생'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마스가 프로젝트가 한 업체만의 사업이 아닌 빅3 모두에게 중요한 일인 만큼 조만간 구체적인 방안이 언급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bel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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