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락 기자]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이혼 소송 과정에서 승소하기 위해 '300억 메모'의 존재를 공개한 행위가 결국 자기 발등을 찍는 자충수가 되고 있는 형국이다. 검찰이 노 관장을 비롯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 자금 흐름을 파악하는 등 수사를 본격화하고 있다. 노 관장을 '불법 비자금 상속자'로 지목한 시민단체의 비판 목소리 또한 점점 커지고 있다.
30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는 최근 노 전 대통령 일가 등의 금융 계좌 자료를 확보해 자금 흐름을 쫓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일가가 그간 비자금을 관리해 왔다고 보고, 은닉 자금의 행방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노 전 대통령 일가를 둘러싼 비자금 의혹은 노 관장이 지난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이혼 재판 항소심에서 '300억 메모'를 증거 자료로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SK 성장에 대한 노 관장의 기여가 전혀 인정되지 않으며 최 회장의 승리가 점쳐지는 상황에서, 노 관장 측은 '선경 300억'이라고 쓰인 메모를 꺼내 들며 '이 돈이 기업 성장의 종잣돈이 됐기 때문에 노 관장의 기여가 있다고 봐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메모는 노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가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메모와 함께 이전까지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던 선경건설(현 SK에코플랜트) 명의 약속어음(50억원짜리 6장)도 증거로 제출됐다.
최 회장 측은 노 전 대통령에게 300억원을 받은 적이 없고,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활동비를 요구하면 주겠다는 약속이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노 관장의 주장을 받아들여 재산 분할금 1조3808억원을 책정했다.
항소심 결과만 놓고 보면 노 관장이 꺼내든 '300억 메모' 카드는 성공적이다. 다만 비자금 의혹에 대한 거센 비판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노 관장은 이혼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부정한 돈의 존재를 스스로 알렸고, 또 2심 재판부는 은닉에 성공한 범죄 수익을 판결의 기초로 활용한 것이다.
노 관장이 '300억 메모'를 활용한 것은 추징금 완납 이후 더 이상 비자금 관련 뇌물죄 수사·추징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5·18기념재단 등 시민단체는 노 관장이 '300억 메모'를 통해 그동안 숨겨온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부정 축재 은닉 재산의 실체를 스스로 인정했다고 보고 이들을 잇달아 고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시민단체는 노 관장의 동생 노재헌 원장이 이끄는 동아시아문화센터 기부 등을 통해 노 전 대통령 일가가 자금을 세탁했고, 불법 증여까지 이뤄졌다고 지적한다. 시민단체 군사정권범죄수익국고환수추진위원회(환수위)는 김 여사를 '불법 비자금 관리자', 노 관장과 노 원장을 '불법 비자금 상속자'로 규정하고 있다.
비자금 규모는 1000억원 이상이 거론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 문제를 지적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은닉 자금은 메모로 알려진 300억원 등 김 여사의 904억원, 2007~2008년 적발했지만 검찰·국세청이 묵인한 214억원+α, 2016년부터 2021년까지 동아시아문화센터로 기부된 147억원, 지난해 노태우센터로 출연된 5억원 등이다.
만약 검찰 수사를 거쳐 비자금 몰수, 관련자 처벌이 이뤄진다면 '300억 메모'는 이혼 소송의 승리 카드가 아닌, 무모한 자충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비자금 의혹의 출발점인 '300억 메모' 작성 시기가 1990년대인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수사의 관건은 공소시효가 살아있을지 여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시민단체는 비자금 환수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더불어 은닉 자금이 동아시아문화센터 등 공익법인을 거쳐 노 전 대통령 일가에게 흘러갔다는 점에서 그 규모를 확인해 상속세나 증여세 부과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환수위는 "5·18 특별법에는 내란범이 저지른 범죄 행위에 대해 기한을 두지 않는 조항이 있다. 노 전 대통령 불법 비자금도 그것에 맞게 수사돼야 한다"며 "비자금 자체를 환수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수단으로 상속·증여된 부분에 대한 상속세나 증여세 부과도 반드시 이뤄져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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