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지난달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국내 경제계가 분주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타 국가를 향한 관세 부과 조치를 한 달간 유예하면서 한숨을 돌리게 됐지만, 향후 예측 불가능성을 고려하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주요 국내 기업들이 회원사로 있는 경제단체들은 대비 차원의 세미나를 잇달아 열고 태스크포스(TF)도 운영하고 있다. 조만간 트럼프 2기 행정부 고위 인사와 만나기 위해 경제사절단도 파견한다.
5일 경제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주요 경제단체들은 트럼프발(發) 충격에 대비하기 위한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멕시코·캐나다 대상 관세 부과가 일단 유예돼 당장 국제 무역 질서가 크게 흔들리지 않았더라도 다양한 측면에서 이번 관세 압박은 예고편에 불과하다고 보는 등 종합적인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경제계 관계자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먼저 현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최근 '트럼프 2.0 시대 개막 100시간과 한국 경제'를 주제로 글로벌 줌 세미나를 열고 한국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재차 자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초기 정책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기획된 이번 세미나에서는 △4월 이후 관세 부과 정책 본격화 △중국 자본 한국 유입에 따른 부작용 △원달러 환율 급등 가능성 등의 관측이 언급됐다. 향후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대미 정책 콘트롤타워 구성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국무역협회는 지난 4일 트럼프 리스크에 따른 한국 수출 기업들(1010개사)의 우려 사항과 관련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경영 환경을 개선하려면 환율 안정, 물류 지원 등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국무역협회는 "최근 환율 변동 폭이 커 자금 운용에 대한 기업들의 불확실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물류비 역시 지정학적 불안정성으로 예측이 힘들어 이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함께 향후 추가로 이뤄질 보호무역 조치에 대해서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경제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오는 6~7일 이틀에 걸쳐 한국최고경영자포럼을 열어 트럼프 행정부 2기 한미 관계를 전망하고, 향후 대응 방향을 모색할 계획이다.
나아가 한경협의 경우 지난달 '트럼프 2기 TF'를 본격 운영하는 조직개편을 실시했다. 급변하는 대외 정책 환경에 전방위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TF는 신속한 트럼프 2기 정책 모니터링·분석, 대응 방안 제시, 미국 현지에 한국 경제계 입장 전달 등의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TF를 이끌고 있는 정철 한경협 원장은 "향후 100일이 한국 산업의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기로가 될 것"이라며 "경제단체와 싱크탱크 등 미국 현지 파트너와 협력해 한국 경제계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우리 기업들이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는 미국 방문 일정을 준비하고 있다. 20대 그룹 최고경영자(CEO)로 구성된 '대미 통상 아웃리치 사절단'을 꾸려 오는 19~20일 워싱턴 DC를 공식 방문한다. 탄핵 정국으로 혼란스러운 국내 상황이 이어지자, 사실상 경제계 스스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행보다. 대한상의 회장을 겸하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조현상 HS효성 부회장 등이 사절단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미 통상 아웃리치 사절단'은 19일 미국 의회도서관 토마스 제퍼슨 빌딩에서 한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 상·하원 의원, 정부 고위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하는 디너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20일에는 백악관, 의회 인준을 마친 장관 등 트럼프 2기 행정부 고위 인사와의 면담을 추진, 양국의 소통 채널을 확대한다.
궁극적인 목표는 관세 전쟁 속 안전장치를 확보하고, 양국 정부 간 경제 협력 논의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성우 대한상의 국제통상본부장은 "한국의 대미 투자액은 트럼프 1기부터 2023년까지 1600억불(약 232조원)을 기록, 주요국 중 1위다. 또 미국 내 83만명의 일자리도 창출했다"며 "이렇게 한국 기업들이 미국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 부분을 홍보해 미국의 대미 흑자국에 대한 관세 부과 정책에 적극 대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미 통상 협력의 첫 단추를 잘 끼워서 트럼프 2기 양국 경제 협력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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