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선영 기자] 농협금융지주의 차기 회장 인선 절차가 예상보다 지연되고 있다. 현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의 임기가 일주일가량 남았음에도 탄핵 정국에 적합한 후보를 물색하는데 난항을 겪고 있는 모습이다. 이번주 차기 회장 윤곽이 드러날 전망인 가운데 거취가 확정되지 않은 이석준 회장이 임기를 이어나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은 5대 금융 중 유일하게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의 임기가 올해 말 만료된다. NH농협은행 차기 행장 후보로 강태영 NH농협캐피탈 부사장이 내정된 가운데 차기 지주 회장에 대해선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업계의 관심은 새 농협금융지주 회장 인선에 쏠리고 있다. 현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의 임기가 불과 일주일가량 남았음에도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가 후임 인선에 난항을 겪고 있어서다.
보통 농협금융 회장 후보 추천이 계열사 대표보다 먼저 이뤄졌으나 이번에는 최종후보 선정에 깊은 고심을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2022년 12월 12일 후보로 결정된 것과 비교하면 당초 계획보다 추천이 지연되고 있다. 만약 회장 선임이 지연돼 공백이 생길 경우 농협금융지주는 전략기획 부사장이 직무를 대행하는 내규를 두고 있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고 기존 임기 만료가 12월 말까지이기 때문에 늦어도 이번주 안에는 (차기 지주 회장 발표가) 나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임추위가 차기 회장 후보 선임 절차에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탄핵 정국 등에 후보군 압축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동안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대부분 관료 출신 선임돼 '관치'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최근 정국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면서 적합한 인사를 찾지 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올해 역시 외부인사 기용 가능성이 높게 관측됐으나 외부인사 중 후보군으로 언급돼 왔던 기획재정부 등 관료 출신 인사들이 회장직을 고사하면서 후보 선임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선 이석준 회장이 1년 더 연임하거나 전 은행장 등 내부 출신 인사들의 기용 가능성도 점쳐진다. 다만, 이 회장을 포함해 총 7명의 역대 농협금융 회장 중 농협 내부 출신 인사는 초대 신충식 회장과 전임 손병환 회장 등 두 명뿐이다.
이 가운데 탄핵 변수 상황에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의 취임 후 첫 인사라는 점에서 이번 회장 인사에 강 회장의 입김이 작용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농협중앙회는 농협금융지주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강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강 부사장이 농협은행장으로 내정되면서 금융 계열사 인사에 대한 농협중앙회의 영향이 커졌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 이번에 새롭게 내정된 5명 가운데 3명은 강 회장과 같은 경상도 출신이다.
또 현재 농협금융 임추위는 6명으로 구성됐는데, 강 회장의 의중이 CEO 인사에 반영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임추위 구성원 내 비상임이사인 박흥식 지주 비상임이사는 강 회장이 추천한 인물이다.
이석준 회장이 임기를 이어나가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석준 회장은 대표적인 경제관료 출신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캠프시절 외부영입 1호로 주목 받았고 2023년 초 2년 임기의 NH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했다.
이 회장은 강 회장의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 5월 이 회장이 NH투자증권 차기 대표에 전문성을 내세운 증권사 인사를 추천했으나 강 회장이 전문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농협중앙회 출신 인사를 내세우면서 양사의 갈등이 외부로 표출됐다. 결국 이 회장이 지지한 윤병운 당시 NH투자증권 부사장이 대표로 선임됐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농협금융지주 회장의 자리가 그동안 사실상 정부 추천 인사가 계속 내정돼 있었던 터라 현 시국에 적절한 인사를 결정하거나 연임을 결정짓는 것 또한 부담이 될 것"이라며 "부담을 덜 뿐만 아니라 강호동 회장의 지배력 강화 측면에서도 내부인사의 추천도 점쳐진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탄핵 정국과 맞물려 후보군 물색에 난한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지주 회장 인선이 늦어지면서 자연스레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이석준 회장의 연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올해 초부터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지주·계열사에 대한 인사 개입을 하고 있다고 지적해 왔다. 또 농협은행의 금융사고 원인을 내부통제 부실과 지배구조로 지목하면서 농협금융·은행에 대한 정기검사도 진행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주택건설회관에서 열린 건설업계 및 부동산시장 전문가 간담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농협금융과 관련해 "금융의 전문성, 건전성, 운영 리스크 관리와 관련한 경험에 더불어 농민·농업에 대한 애정과 이해도를 가진 균형 있는 분에 대해 절차를 진행할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