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 사고 발생 10년…노루페인트 인근 주민들 낙후된 공장에 불안감


2014년 에폭시 누출 사고…공장 이전 문제 본격화
전문가 "법적 문제 없어도 도의적 책임 있어 보여"

경기도 안양 박달 지식·첨단산업단지 조성을 두고, 안양도시공사와 박달 준공업단지 입주업체들 간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경기도 안양에 있는 노루페인트 본사 전경. /장병문 기자

[더팩트|이중삼 기자] 경기도 안양 '박달 지식·첨단산업단지' 조성을 두고, 안양도시공사(이하 공사)와 박달 준공업단지 입주업체들 간 팽팽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박달 준공업단지 부지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노루페인트가 이전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공사는 노루페인트가 공장 이전을 합의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노루페인트는 검토는 하되 합의한 적이 없다고 맞서고 있다. 지역 주민들과 준공업단지 일부 업체 임직원 간의 온도차도 갈린다. 주민들은 시설이 오래된 화학공장이 거주지 인근에 있는 것에 우려를 표하고 있고, 임직원들은 생존권을 위협받는다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10일 <더팩트> 취재 결과, 공사는 최근 노루페인트 측에 (공장 이전 관련) 개별 면담을 요청했고 만남도 이뤄졌다. 다만 공사는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면서도 원만한 합의가 도출될 때까지 협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공사는 박달 지식·첨단산업단지를 계획하고 있다. 이 사업은 안양시 만안구 박달동 노루페인트 일원 공업지역의 도시기반시설·산업기반시설의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토지이용의 효율화, 고용 창출·산업구조 고도화를 통한 산업경쟁력 강화를 도모하기 위해 추진되는 사업이다. 오는 2027년에 산업단지 계획을 수립해 2028년에는 산업단지 지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정 이후에는 협의를 통한 토지보상을 실시하고, 2029년에는 사업에 착공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사업계획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정이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

공사가 조성사업 구상을 본격화한 시점은 지난 2020년이다. 공사 관계자는 "이 시기 조성사업을 위한 기본 구상용역을 발주하는 등 밑그림을 그렸다고 볼 수 있다. 2021년에는 박달동 일원 공업 용지 개발을 위해 연구용역을 실시했다"며 "다만 아직 사업이 확정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구체화된 것은 없다"고 했다. 이 구상용역은 산업단지를 조성했을 때 공공의 경제적 이익이 생길 수 있는지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진행됐다.

현재 이 부지에는 노루페인트를 비롯한 코카콜라, CJ프레시원, 하이트진로, 현대모트리스, 고려부품, 광동제약 등 20여 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입주한 업체들 가운데서는 생산시설을 갖춘 업체에서 공장 이전 반대가 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업체는 물류 시설만 갖추고 있어 생산 시설이 있는 업체보다 상대적으로 이전에 대한 부담은 적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체 관계자는 "공사와 입주업체 간 갈등이 조속히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우리 업체의 경우는 여건만 되면 공장 이전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안양시와 노루페인트 간 갈등의 시발점은 지난 2014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루페인트 안양공장에서 에폭시 누출 사고가 터졌다. 이 사고로 인근 지역에서 심한 악취와 함께 주민 100여명이 두통과 설사 등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주민들의 공장 이전을 요구하는 항의가 빗발치자 노루페인트는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후 누출 사고가 났던 생산시설을 약 3년에 걸쳐 단계별로 이전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생산 시설 모두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공사는 노루페인트가 줄곧 공장 이전을 검토해왔고, 또 합의했다는 주장이다. 반면 노루페인트 측은 검토를 한다고 했지만, 약속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만안구에 거주하는 A 씨는 "거주지에 공장이 있는 한 언제든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100% 안전하다고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안전한 거주 환경을 위해 서로가 양보해야겠지만, 공장 이전은 이른 시점에 됐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주민 B 씨는 "노루페인트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던 업체다. 50년 가까이 된 향토업체로 알고 있다"며 "10년 전 에폭시 누출 사고가 터진 이후 공장 이전 논의가 있었다고 부모에게 들었다. 건물도 낙후돼 보이는데, 당장은 떠나기 어렵겠지만 안양시나 공사와 잘 협의해서 주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다른 곳으로 옮겨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노루70년사 보고서에 따르면 안양공장은 지난 1976년 4월 1일 준공됐다. 올해로 48년된 공장이다.

노루페인트는 지난 2010년 본사와 계열사를 분산시키기 위해 공장 이전을 내부에서 논의하기도 했다. 노루페인트 관계자는 "당시에는 본사와 계열사가 같은 공간에 있었다"며 "공장을 운영하기에는 땅이 협소했던 터라, 계열사들을 다른 지역으로 분산시키기 위해 논의했고 (일부 시설 이전은) 실행에 옮겼다"고 했다.

노루페인트 안양 공장에 지주사인 노루홀딩스 본사와 생산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노루페인트는 경기도 평택과 경상남도 함안군에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장병문 기자

◆ 안양시 첨단산업단지 추진에도 노루페인트 건물 증축 시도

안양시가 박달 지식·첨단산업단지를 추진하고 있었지만, 노루페인트는 시설 전체를 이전할 계획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루페인트는 지난 5월 공장부지 내 연구단지 증축을 위해 시에 건축심의를 신청했다. 그러나 시는 노루페인트 공장이 공사가 추진 중인 단지 조성 사업에 배치된다는 이유로 연구단지 증축을 불허했다.

노루페인트 관계자는 "시와 공사는 노루페인트가 연구소 증축을 이유로 건축허가를 요청했을 때 공장 이전 문제를 다시 꺼내들었다"며 "(안양시는) 전부터 이전이 어렵다는 것을 수년 전부터 인지하고 있는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노루페인트는 박달 준공업단지에 3분의 1에 달하는 토지를 보유하고 있다.

공사는 최근 입주업체를 대상으로 두 차례 간담회를 열었다. 새롭게 조성될 단지에 다시 입주할지 또는 보상을 받고 이전할지 등을 논의하는 차원에서 기획됐다. 그러나 두 차례 모두 각자의 입장만 확인했을 뿐 입장차를 좁히지는 못했다. 현재는 각 기업별로 면담을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공사 관계자는 "노루페인트, CJ프레시원 등은 면담을 한 상태"라며 "이번 주에는 광동제약과 하이트진로 일정이 잡혀있다. 몇몇 업체는 회신을 주지 않아 다시 일정을 잡을 예정"이라고 했다.

노루페인트가 이전을 반대하는 이유는 핵심 생산시설을 단기간에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것이 쉽지 않고 임직원들의 생존권도 있다. 노루페인트 관계자는 "안양 사업장에 근무하는 노루페인트 임직원이 1000여명이고, 그 가족을 포함하면 약 1800명이 시에 삶의 터전을 두고 있다"며 "공장 이전은 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법적인 문제는 없어 보인다면서도 도의적인 책임은 있다고 진단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에폭시 누출 사고 이후 공장 이전 관련 논의를 할 때 언제까지 이전하겠다고 하는 계획이 문서화됐어야 한다. 선후관계가 명확했어야 한다는 의미"라며 "법적 문제가 없더라도 도의적인 책임은 있어 보인다"는 의견을 내놨다.

김상철 유한대 경영학과 교수도 "누출 사고 발생 후 시와 노루페인트가 공장 이전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했을 것으로 본다"며 "다만 이전 계획 관련 현재 문서로 남아있는 것이 없어 보인다. 공공의 목적이 우선시돼야 한다면 시와 공사의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6월 17일 열린 안양시의회 정례회에서 음경택 시의원은 노루페인트에 공장 이전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음 의원은 이날 "시가 추진하고 있는 박달 지식·첨단산업단지 조성사업은 예정 용지에 소재한 공장이 모두 이전해야 추진할 수 있다"며 "개발 예정 용지의 51%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 노루페인트가 이전하지 않으면 박달 첨단산업단지 사업을 추진이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재현 시의원도 "박달동에 첨단산업단지와 스마트밸리가 조성된다는 것은 주민 누구나 다 알고 있다"며 "10년이 넘도록 공장 이전을 하지 않은 것은 시가 미온적으로 대응한 결과"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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