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수명 82.7세, 2025년 초고령 사회로 진입. 만 60세 정년퇴직 이후에도 해당 세대 대부분이 일을 해야만 하는 게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정부도 2020년 1월 1일부터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을 지급하는 등 계속고용을 장려하고 있다. 하지만 양질의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대부분이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다. 계속고용이 '필수'가 되어가는 현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더팩트>가 계속고용의 현재와 내일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 | 문은혜 기자] 계속고용에 대한 경영계와 노동계의 입장 차이가 상당한 가운데 정년을 넘긴 고숙련 인력을 활용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에 나서는 기업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정부 차원의 관련 제도가 마련되기 전에 개별 기업이 각자의 상황에 맞는 방식으로 계속고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과 근로자의 필요성이 교집합을 이룬 결과로 풀이된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포스코 등 제조업 기반의 주요 기업들은 고숙련된 인력을 정년 이후에도 계약직·촉탁직 형태로 재고용하고 있다. 현장 경험과 숙련이 필수인 기술직 특성이 반영된 결과다.
◆현대차·기아·포스코, 재고용제 선제 도입
특히 현대차와 기아가 퇴직 후 재고용 제도 확대에 힘쓰는 분위기다. 현대차는 지난 7월 60세 정년퇴직자가 최대 2년 더 일할 수 있는 '숙련 재고용' 제도를 시행한다고 밝혀 산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기존에 1년이었던 기간을 최대 2년으로 연장한 것이다. 기아자동차도 앞서 지난해 재고용 기간을 2년으로 연장했다.
정년퇴직 후 재고용되면 통상 임금이 대폭 줄어든다. 그런데도 해당 제도를 활용하는 직원은 늘어나는 추세다. 현대차가 발간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보면 신규 채용된 50대 이상 직원은 지난 2020년 1293명에서 지난해 2968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50대 이상 채용 직원의 상당수는 정년퇴직 후 재고용 대상자다.
포스코도 지난해 노사 합의를 통해 정년퇴직자의 70%를 재고용하는 '고용 연장형' 제도를 도입했다. 재고용 단위는 1년, 필요에 따라 최대 2년까지 연장된다. 포스코홀딩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포스코의 지난해 정년퇴직 인원은 총 519명, 50세 초과 신규 채용 인원(퇴직 후 재고용 인원 포함)은 419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년퇴직 후 상당수가 재고용된 셈이다.
숙련자 재고용 제도를 운영 중인 한 기업 관계자는 "근로자 입장에서는 은퇴 후에도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고 회사는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에 숙련 기술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노사 모두가 윈윈"이라고 강조했다.
건설·기계업계에서도 현장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중장년을 적극 활용하는 분위기다.
SK에코플랜트의 경우 지난해 기준 총 3670여명의 직원 중 28%(1030명)가 50대 이상 중장년 경력자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SK에코플랜트 관계자는 "현재 정년은 만 60세이지만, 퇴직한 근로자들이 원한다면 간단한 재고용 절차를 거쳐 촉탁직으로 채용 중"이라며 "해당 제도를 통해 해외 현장에서 근무 중인 70대 근로자의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현대엘리베이터도 경력이 풍부한 중장년을 재고용하기 위해 홈페이지에서 상시적으로 경력자를 채용하고 있다. 지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채용한 경력직 인원 중 약 12%는 중장년이라는 것이 현대엘리베이터의 설명이다. 또한 정년퇴직 이후에도 최대 3년까지 근무할 수 있는 촉탁직 제도도 운영 중이다. 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는 "중장년 근로자들은 현장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도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해 매우 중요한 인력"이라고 설명했다.
◆SK에코플랜트, 70대 재고용…현대엘리베이터, 중장년 상시 채용
제과업계에서는 크라운제과의 행보가 눈에 띈다. 청년층이 생산직, 2교대 근무 등을 선호하지 않는 탓에 심각한 인력난을 겪었던 크라운제과는 지난 2016년 정년을 60세에서 62세로 연장하고, 63세부터는 근로자 의사에 따라 1년 단위 촉탁 재고용을 통해 근무할 수 있도록 했다. 크라운제과 인사노무팀 관계자는 "젊은 직원은 잘 충원되지 않는데 정년을 맞아 퇴직하는 중장년 직원들은 늘어나다 보니 인력에 공백이 생겼다"라며 "이에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젊은 60대 근로자의 정년 연장과 재고용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크라운제과는 중장년 근로자들의 경제적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노조와 협의를 통해 특별한 임금피크제도도 도입했다. 일반적인 임금피크제는 5년간 같은 감액률을 적용하지만, 크라운제과는 지난 2021년부터 임금피크제가 시작되기 전 급여를 기준으로 1~2년 차에는 10%, 3년 차에는 15%, 4~5년 차에는 20% 등 단계적으로 감액률을 적용했다. 뿐만 아니라 임금피크제 기간 기존에 하던 직무와 직책도 유지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중장년 근로자들의 근로 의지가 높아졌다는 것이 크라운제과의 설명이다.
산업계에서 정년을 맞은 숙련자들을 재고용하는 움직임은 조금씩 확산 중이다.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2023년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종사자 1인 이상 표본 사업체 171만9502개 가운데 정년제를 운영하는 사업체는 21.2%(36만3817개)였다. 이들 중에서 재고용 제도를 운영하는 사업장 비율은 36%(13만981개)로 나타났다. 정년제 사업장의 재고용 제도 운영 비율은 지난 2020년 24.1%에서 3년 만에 10%p 이상 높아졌다.
이승호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안정망연구센터 소장은 "정년 연장이나 재고용 제도를 기업에 일률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각 기업의 상황에 맞춰 고용 기간을 연장할 방안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④편에서 계속
[관련기사]
▶[계속고용 시대ⓛ] 정년 이후 근무, '선택' 아닌 '필수'
▶[계속고용 시대②] 선진국의 정년 이후 고용 현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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