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한림 기자] 롯데그룹의 핵심 계열사 롯데케미칼은 최근 곤욕을 치렀다. 지라시에서 비롯된 유동화 논란에 주가가 요동치더니 10거래일간 30%나 넘게 빠진 탓이다. 롯데케미칼을 비롯한 그룹 계열사들이 해명 공시를 나란히 내면서 확대된 주가 변동성은 다시 안정세를 찾았으나, 급락한 주가와 불거진 채권 이슈는 부담스럽긴 하다.
시장에서는 롯데케미칼이 올해 어떤 형태로 자금조달을 하고 있는지 눈여겨보는 분위기다. 이 과정에서 롯데케미칼이 주가수익스와프(PRS)를 통해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라는 사실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롯데케미칼 외에도 CJ ENM, SK온 등 국내 대기업들이 같은 방식의 계약을 추진하거나 완료한 것으로 알려져 궁금증을 더한다.
PRS는 주식담보대출의 일종으로 계약 만기 시 주가가 기준가보다 낮거나 높으면 서로 차익을 물어주는 형태의 계약이다. 주가가 기준가보다 오른 채 만기가 되면 매수자인 금융사가 매도자인 기업에 주가 상승분을 제하고, 반대로 주가가 기준가보다 낮다면 돈을 빌린 기업이 빌려준 기업에 손실금을 더 지급하는 방식이다.
기업으로서 PRS는 역시 부채비율을 늘리지 않고도 거금을 끌어올 수 있는 게 장점이다. 투자자 측면에서도 판매가격과 같게 지분을 매수하기 때문에 비교적 원금 회수에 안정적이고, 이자수익과 배당 등을 통해 추가 이익도 취할 수 있다.
롯데케미칼도 같은 맥락에서 PRS를 추진 중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유동화 문제가 불거진 건 3개년 누적 이자비용 대비 상각전영업이익(EBITA)을 5배 이상 유지하지 못해 약 2조450억원 규모의 회사채 재무특약 미준수 사유가 발생했다는 것이지만, 이는 사채권자 집회를 소집해 특약사항을 조정하면 해결되고 가용 예금도 충분하다고 밝히면서 일단락됐다.
지난 8일 하루 만에 주가가 9.66% 급락한 후 10거래일간 매일 주가가 네 자릿수씩 오르내렸으나, PRS 계획과 함께 해명 공시를 낸 22일부터 보합권으로 돌아선 롯데케미칼의 주가 흐름이 이를 대변한다. 부채를 늘리지 않고 선제적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PRS를 선택해 당면한 유동성 위기설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올해 PRS를 통해 약 1조3000억원을 조달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지난달 미국 내 에틸렌글리콜 생산 법인인 롯데케미칼루이지애나(LCLA)의 3자 배정 유상증자로 약 6600억원을 PRS 방식으로 우선 조달했다. 남은 6500억원은 PT롯데케미칼인도네시아(LCI) 지분 매각을 통해 조달할 계획이다. 이 역시 PRS를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3분기 말 기준 롯데케미칼의 부채비율은 75% 수준이다. 같은 기간 보유 중인 부동산을 포함한 장단기 금융자산은 4조원을 넘는다. 특약 조정을 통해 회사채 미준수 사유만 극복한다면 부채비율이 연내 100%를 넘지 않으면서도 논란이 된 유동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에 PRS가 기업의 자금조달 수단 중 가장 많이 활용된 기업공개(IPO)보다 낫다는 이야기가 투자은행(IB)업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사업군이 다른 여러 계열사를 둔 대기업집단의 경우 더욱 그렇다. 물론 PSR도 계약 특성상 리스크는 존재한다. 계약 기간 내 시장 신뢰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도 필연적이다. 다만 회사채 시장이 녹록지 않고, 지주사의 지원이나 계열사 간 거래 등을 통한 자금조달ㅇ은 당국의 감시 강화 등에 문턱이 높아진 상황에서 IPO 외엔 선택지가 없었다던 과거와는 다른 분위기도 풍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PRS는 주가 하방 압력을 견뎌야 하는 근본적인 리스크나, 계약 과정에 암묵적 합의를 통해 일시적으로 돈을 맡기는 파킹거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은 존재한다"면서도 "롯데케미칼 유동성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주목받고 있지만 부채비율이 170%가 넘던 SK온이 지난 8월 PRS 방식을 통해 1조원가량을 조달했다. 업황 악화 등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 입장에서는 당장 재무 부담이 덜하기 때문에 PRS를 통한 자금조달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활발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