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오승혁 기자] 최근 롯데그룹 유동성 위기론이 SNS를 통해 퍼졌다. 롯데그룹의 유동부채 규모가 39조원인데 올해 그룹의 전체 예상 당기순이익이 1조원에 불과해, 다음달에 '모라토리엄(지급유예)'를 선언하고 과거 대우그룹처럼 공중분해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연간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롯데그룹의 실적을 견인했던 롯데케미칼의 부진 지속이 위기론에 힘을 더했다. 롯데케미칼은 해당 루머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며 해명을 공시했지만, 주가는 여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업계는 롯데케미칼이 자산매각, 경영진 급여반납, 희망퇴직 등의 실적 개선 노력을 하고 있고 현금 흐름이 우려에 비해 양호해 유동성 위기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한다.
20일 롯데케미칼의 주가는 6만5200원으로 거래 종료됐다. 롯데케미칼이 유동성 위기론을 반박한 지난 18일의 종가인 6만5900원에 비해 600원 낮다. 위기론이 등장하기 전인 지난 15일의 종가인 7만3400원과 비교하면 10% 이상 하락했다. 전일 6만7200원에 거래가 종료되면서 약간의 반등을 보였지만 낙폭을 메우지는 못했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공시한 것과 같이 유동성 위기론은 '사실무근'이며, 상당히 악의적으로 조작된 정보들이 담겨 있다"며 "중국발 공급과잉과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로 인한 업황 악화 속에서 자산매각과 경영진 급여반납, 희망퇴직 검토 등으로 수익성 개선을 위해 총력을 쏟는 중"이라고 말했다. 롯데그룹은 해당 소문의 유포자에 대한 수사의뢰 등의 법적 조치를 검토 중이다.
롯데케미칼을 비롯한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2020년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각종 1회용품 사용을 늘리면서 최대 수출국인 중국을 비롯한 수요 급증을 예측했다. 하지만, 중국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정부 차원의 기초 석유화학 소재 자급화에 나서면서 오히려 중국발 공급과잉이 발생해 석유화학 제품 급락이 실적을 악화시켰다. 또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 등이 원유 가격을 높여 원재료 값은 상승했다. 이에 롯데케미칼은 올해 3분기 영업손실 4136억원을 기록했다. 4분기 연속 적자 행진을 하고 있다.
그러나 증권가에서는 이런 업황 악화와 별개로 롯데케미칼의 유동성 위기론은 과장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동욱 IBK기업은행 연구원은 "롯데케미칼은 올 3분기 말 기준 3조6000억원의 현금예금을 보유하고 있고 올해 추정 부채비율은 78.6%로 높지 않다"며 "코스피200 에너지·화학 업종의 순차입금 비율이 62.0%, 105.2%인 점을 봤을 때 유동성 우려는 과도하다"고 말했다.
전우제 KB증권 애널리스트는 "계열사를 제외한 롯데케미칼 자체 펀더멘탈을 고려하면 현금 흐름은 우려보다 양호하다"라며 "현금흐름 측면에서도 자본지출(CAPEX)이 올해 2조8000억원에서 내년 1조7000억원, 장기 1조원으로 마무리되는데, 연간 감가상각 1조3000억원을 고려한다면 유동성 위기 걱정은 시기상조"라고 전망했다.
롯데케미칼은 인도네시아 LINE 프로젝트에 3조1000억원, 일진머티리얼즈 인수에 2조7000억원을 투입하며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투자비가 일시적으로 급증해 차입급이 상승했다. 롯데케미칼은 투자 리스크 관리, 공정 효율 극대화, 자산 경량화 등을 통해 오는 2025년에 현재 10조6000억원에서 5조7000억원으로 차입금을 관리하겠다는 계획을 지난 7월 발표한 바 있다.
롯데케미칼은 자산 경량화 차원에서 최근 말레이시아 합성고무 생산법인 LUSR 청산을 결정했다. 지분 매각으로 1조4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할 방침이다. 롯데케미칼을 지난 7월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업황 악화 지속에 대한 책임경영 강화 행보에 따라 롯데 화학군 계열사 임원진들은 이달부터 10~30%의 급여를 반납한다. 이어 올 3분기에 흑자를 낸 롯데정밀화학을 제외한 생산라인의 가동률을 모두 낮추는 방식으로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다.
한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의 유동성 위기와 부도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며 "롯데그룹의 다른 화학군 계열사의 정리와 롯데케미칼이 가진 대형 자산의 매각이 위기론을 잠재울 수 있는 효과적인 행보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