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오승혁 기자]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선 승리에 국내 배터리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전임 바이든 대통령이 도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미국에서 제조된 배터리에 세제 혜택을 주면서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미국 내 생산기지 구축에 집중해 왔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후보 시절부터 IRA 축소 가능성을 꾸준히 언급한 만큼, 한국 배터리 회사들이 트럼프의 향후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미국 대선 결과를 두고 다양한 각도의 계산을 하고 있다. IRA를 통한 세액공제가 줄어들고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조항도 축소되면 수익성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후보자 시절이던 지난 7월 미국의 경제 전문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정부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엄청난 양의 보조금을 주고 있다"며, "IRA는 인플레이션을 낮추지 않고 높였다"고 미국 내 배터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해외 기업을 향한 지원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트럼프는 당선 공약으로 IRA, AMPC 축소 또는 일부 내용 무력화를 내세웠다.
국내 배터리 업계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AMPC다. 미국 내에서 첨단 기술을 적용한 배터리 생산을 하고 있다고 인정 받아 수령하는 AMPC가 수익성 방어에 기여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 3분기에 AMPC로 4660억원을, SK온은 608억원을 수령했다. 이 두 기업은 각각 AMPC를 제외하면 올 3분기에 177억원, 368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셈이다. 미국 시장에 상대적으로 늦게 진입한 삼성SDI도 내년부터 더 큰 폭의 AMPC를 받을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단독공장 2개와 제너럴모터스(GM), 혼다, 현대차 등과의 합작공장 6개 등 총 8개의 공장을 미국 내에서 운영 및 건설 중이다. SK온은 현대차그룹과 조지아주에 합작 공장을, 포드와 테네시, 켄터키 지역에 총 127GWh(기가와트시) 규모의 공장 3개를 짓고 있다. 삼성SDI는 스텔란티스와 협력해 연 23GWh 규모의 공장을 2025년 가동을 목표로 건설하고 있다.
다만 트럼프의 당선에도 IRA 전면 폐지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IRA를 폐지하려면 의회 승인이 필요하다. IRA를 통해 배터리 공장을 지역에 유치하고 일자리 창출, 지역 경제 활성화 등에 성공한 연방 상하원 의원들이 공화당 소속이기 때문에 승인이 쉽지 않을 듯하다. 주민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1기 때도 오바마 케어(기초 건강보험) 폐지에 실패했다"며 "법안 폐지가 어려워지면 트럼프 당선인이 행정명령으로 보조금 및 세액공제 수령 조건을 변경해 예산을 축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삼정KPMG는 이날 발간한 '트럼프 당선과 국내 산업 영향' 보고서에서 "AMPC 반영으로 영업이익 제고에 수혜를 입었던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트럼프 집권 후 세액공제 혜택이 줄어들면 수익성이 저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미 대선 결과에 따른 정책 및 시장 변화 가능성을 예의주시해 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능동적으로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며,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와 구조적 원가 경쟁력 확보를 통해 IRA 수익에 의존하지 않는 사업 구조 마련, 핵심 원재료 공급망 다변화 등을 전략적으로 추구한다"고 말했다.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과 교수는 "전기차 캐즘으로 인해 배터리 수요가 감소헸고 중국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생산 단가와 핵심 원재료 공급이 유리한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해 경쟁력을 키우는 가운데, 트럼프의 당선으로 국내 배터리 기업이 더 큰 어려움에 처한 듯하다"며 "ESS(에너지 저장 장치) 등의 경쟁력 강화를 통한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와 미국 외의 지역에 생산기지를 마련하는 것을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