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한림 기자]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지난해 3명의 CEO나 출석한 정무위원회(정무위) 국감에서 올해는 증권업계보다 금융계 전반을 다뤘고, 증권사 자체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킨 사안이 많지 않았다는 해석에서다. 그러나 윤병운 NH투자증권 대표가 국감장에 등장했다. 그것도 정무위 국감이 아닌 과학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국감에서다. 이를 두고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윤 대표는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방위 국감에서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장현 한전KDN 대표, 김진구 유진ENT 대표, 그리고 삼성증권 이충훈 부사장과 함께 증인 선서를 한 후 쭉 대기석에 앉아 있다가 노종면 민주당 의원의 호명을 받고 증인석에 섰다.
윤 대표는 YTN 기자 출신인 노 의원과 야당을 중심으로 제기된 '윤석열 정권의 YTN 민영화 강탈' 의혹에서 증인으로 채택돼 국회에 불려 갔다. 이 의혹은 YTN의 최대주주였던 공기업 한전KDN과 한국마사회가 애초 YTN 지분을 팔지 않으려다가, 지난해 8월 갑작스럽게 매각에 나선 것에 대해 정부의 개입이 있지 않았냐는 의혹이다.
윤 대표의 NH투자증권은 당시 한국마사회가 보유한 YTN 지분 입찰공고에서 투자제안서를 제출한 곳으로 유력한 매각 주관사 후보였다. 다만 NH투자증권은 최종적으로 주관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고, 그간 제안서를 내지 않다가 뒤늦게 합류한 삼일회계법인이 주관사로 채택됐다. 이후 유진그룹의 특수목적법인(SPC) 유진ENT가 한국마사회와 한전KDN의 YTN 지분 인수에 나섰고 올해 2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최종 승인을 받아 YTN 최대주주에 올랐다.
노 의원은 이날 국감에서 윤 대표에게 NH투자증권이 한국마사회 주관사 입찰 과정에서 막판 손을 뗀 것으로 보고 배경을 추궁했다. 동시에 유진그룹의 자문을 요청받아 미리 유진그룹이 입찰할 것을 파악했고, 어떠한 외부 압력에 의해 먼저 발을 빼면서 유진ENT가 최종 승자가 될 수 있게 간접적으로 도운 꼴이 됐다는 의혹도 받았다.
윤 대표를 증인석에 불러 세운 노 의원은 이날 국감에서 "한전KDN과 한국마사회 매각 주관사 선정 입찰에 참여한 모든 회계법인과 증권사들을 다 확인해 봤는데 유일하게 NH투자증권만 유진그룹이 입찰할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몰랐나"라고 질의했다.
이에 윤 대표는 "통상적으로 제안서를 제출할 때 이 회사를 살만한 회사가 누가 있느냐를 태핑(Tapping)한다. 태핑하기 전에 스터디(Study)를 하는데 기존에 언론사가 있는 회사들, 아예 없는 회사들, 언론사만 하는 회사들 이렇게 세 부류로 나눠서 누가 살 수 있는지를 스터디했다. 스터디 결과일 뿐"이라며 의혹들을 일축했다.
윤 대표는 노 의원의 "유진그룹이 먼저 자문을 요청했다고 하던데"라는 질의에도 답변을 이어갔다. 그는 연락이 온 것은 맞지만 자문 요청이 아니라는 뉘앙스로 힘줘 말했다. 윤 대표는 "아니다. 연락이 왔는데, 그 연락 받은 내용은 YTN에 대한 공시내용을 정리한 리포트를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것 말고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윤 대표는 이날 국감에서 다시 증인석에 서지 않았다.
윤 대표가 국감에서 목소리를 낸 시간은 2분도 채 되지 않았다. 올해 3월 정영채 전 NH투자증권 대표에 이어 6년 만에 NH투자증권 새 수장으로 취임한 윤 대표는 정작 YTN 매각 작업이 한창이던 지난해는 CEO도 아니었다. 야당이 지적하는 YTN 매각 과정에서 주관사 후보로 NH투자증권이 이름을 올렸기 때문에 회사를 대표해 불려 간 셈이다.
이충훈 삼성증권 부사장이 이날 윤 대표와 함께 과방위 국감 증인에 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삼성증권은 YTN의 공동 최대주주였던 한전KDN의 매각 주관사로 참전해 우선협상 매각 주관사까지 이름을 올렸다가 역시 NH투자증권처럼 최종 주관사에 오르지 못한 곳이다. 이 부사장 또한 이날 노 의원의 질의에 "고객과 신뢰관계 유지를 위해 부득이하게 매각 주관사 지위를 포기하기로 내부에서 결정을 했다"고 답변했다. 각사 경영진의 답변에 따르면 NH투자증권과 삼성증권이 YTN 주주의 지분 매각 주관사 지위를 맡지 않은 배경은 외부 압력이 없는 내부 회의를 통한 '순수한 결정'인 셈이다.
이에 증권업계에서도 증권사 CEO가 국감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 모양새다. 금융업계 현안을 진단하는 정무위 국감에서도 증권사 CEO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가 과방위 국감에 증권사 대표가 증인으로 나선 것이 주목될 일이긴 하나, 지난해처럼 문제를 일으켜 질타를 받은 것이 아닌 의혹에 대한 확인 차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지난해 금융계에서는 증권사들의 내부 리스크 소홀 문제 등이 부각되면서 현직 증권사 CEO들이 대거 국감에 불려 가 질타를 받았다. 그래서 올해도 혹시나 하는 우려는 있었다. 업계에서는 보다 큰 사안들이 증권사 쪽에서 나오지 않으면서 한시름 놨다는 해석도 일부 나온 것으로 안다"면서도 "NH투자증권과 삼성증권 경영진이 YTN 각 대주주의 매각 주관사로 나섰다가 결국 주관사를 맡지 않은 일로 국감에 불려 갔다. 이중 윤 대표가 유일하게 현 CEO였기 때문에 주목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