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황준익 기자] 서울 재건축·재개발 사업지에서 건설사들의 경쟁 입찰이 줄고 있다. 건설 경기가 좋지 않은 데다 공사비 상승으로 사업성이 확실한 곳에만 입찰에 나서고 있어서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 용산구 산호아파트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은 네 번째 시공사 선정을 추진한다.
지난 2일 현장설명회를 연 조합은 다음달 18일 입찰을 마감할 예정이다. 다만 이날까지 시공자 입찰참여 의향서를 제출해야 입찰자격이 부여된다.
조합은 지난 4월 첫 시공사 선정 입찰을 진행했으나 유찰됐다. 6월과 지난달에도 시공사를 선정하지 못하자 결국 지난달 24일 네 번째 시공사 선정 공고를 냈다. 지난달 23일 마감된 입찰에는 롯데건설이 단독으로 참여해 경쟁 입찰이 성립되지 않아 다시 유찰됐다.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정비사업 시공사 선정 시 한 곳의 건설사만 입찰에 참여하면 유찰된다. 유찰이 2회 이상 반복될 경우 정비사업 조합은 단독입찰한 건설사와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서울 서초구 신반포2차 재건축조합도 지난 4일 시공사 선정을 위한 현장설명회를 개최한 결과 현대건설이 단독으로 참석해 유찰됐다. 지난달 진행된 1차 입찰에서도 현대건설 1곳만 참여한 만큼 시공사 선정은 수의계약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서울 마장 세림아파트 재건축 역시 현대건설만 입찰 참가 의향서를 냈다.
강남 최대 입지로 꼽히는 신반포2차마저 유찰되는 등 최근 건설업계엔 재개발·재건축 수주 경쟁이 실종됐다. 건설사들은 공사비 상승으로 경쟁 입찰에 따른 출혈 경쟁을 피하고 있다. 대신 수주 가능성이 높거나 사업성이 확실한 사업지에만 집중하고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입지와 사업성이 뛰어난 단지를 선별적으로 검토해 입찰에 참여하고 있다"며 "공사비 상승으로 조합이 내세우는 조건도 까다롭다"고 말했다.
실제 올해 서울 내 재개발·재건축 사업지에서 2곳 이상의 건설사가 참여한 곳은 여의도 한양아파트, 도곡개포한신아파트 정도에 불과하다. 시공권 경쟁이 벌어지면 홍보비 등 큰 비용이 발생하는데 사업권을 따내지 못하면 손해다. 업계에선 한 건설사가 긴 시간 공을 들인 곳은 피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분석한다.
건설사가 경쟁 없이 시공권을 따내면서 수의계약을 맺는 것이 조합에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조합의 경우 아파트 브랜드가 중요한 상황에서 시공사 간 적당한 경쟁은 아파트 가치의 큰 상승을 불러온다. 반면 경쟁이 사라질수록 시공과 관련된 선택지도 줄어들 수밖에 없고 공사비나 향후 공사 진행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건설사들은 조합들의 과도한 입찰보증금이 수주를 기피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도시정비사업 입찰보증금은 조합 측에서 결정한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비 대비 입찰보증금 비율이 10~20%인 단지가 적지 않다"며 "수백억원에 이르는 입찰보증금을 납부할 수 있는 건설사는 대형 건설사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라고 말했다.
건설사들이 출혈 경쟁을 피하려는 분위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방 아파트를 중심으로 미분양 주택이 급증하면서 수익성 하락 압박이 있는 데다 공사비 상승까지 겹친 상황이라서다.
업계 관계자는 "주택경기가 워낙 안 좋다 보니 선택과 집중을 통한 수주 경향이 커졌다"며 "서울 강남권마저 수의계약이 될 정도면 다른 사업지는 시공사를 구하기 더욱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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