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한림 기자] 정부가 기업 밸류업 정책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지 넉 달째를 맞았지만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한 증권사는 단 3곳에 그치고 있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에 대한 양질은 고사하고 안내 계획도 공시하지 않은 증권사가 대다수인 결과다.
최근 밸류업 계획 일환으로 발표된 한국거래소의 'KRX밸류업 지수'에도 지수에 포함된 100개 상장사 중 증권사는 3곳만 포함되면서 국내 증권사의 정부 정책 참여도가 낮다는 현실이 드러났다는 평가도 나온다. 증권사가 기업가치 제고 계획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는 배경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27일 기업공시채널 KIND에 따르면 총 47개 상장사가 기업가치 제고 계획이나 안내를 공시하고 있다. 이중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는 16곳, 기업가치 제고 계획 발표를 예고한 안내 공시를 이행한 곳은 29곳, 이행현황을 공시한 곳은 2곳이다.
증권사(금융지주사를 제외한 단일 증권사 기준)로는 키움증권,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DB금융투자가 공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다만 NH투자증권은 지난 8월 30일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예고한 안내 공시만 했기 때문에 실제로 공시를 이행한 곳은 키움증권, 미래에셋증권, DB금융투자 등 3곳에 불과하다. KB증권은 따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 홈페이지를 만드는 듯 자체적으로 밸류업 정책에 참여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채널 공시는 이행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한 증권사의 메리트는 존재했다. 시장에서는 각 증권사의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를 주주들과 약속으로 해석하면서 투심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해석하는 분위기가 깔려서다.
실제로 키움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은 각각 공시를 통해 주주환원율을 30%, 35%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 DB금융투자가 공시한 주주환원율 확대치는 40%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자본이익률(ROE), 주가순자산비율(PBR)에 대한 계획도 밝혔다.
가시적인 성과도 발생했다. 한국거래소가 지난 24일 발표한 KRX밸류업 지수에 키움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이 밸류업 계획을 조기 공시한 기업에 주어지는 특례편입으로 포함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DB금융투자는 KRX밸류업 지수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이달 5일 중소형 증권사 중 최초로 밸류업 계획을 공시하면서 하루 만에 주가가 21.39% 뛰어오르는 효과를 내기도 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국내 증권사들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한 상장사가 갖는 이점이 있는데도 여전히 밸류업 정책 참여에 대해 소홀하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증권업이 갖고 있는 고유의 변동성 때문에 자기자본익률(ROE)나 주주환원율 등 핵심 제고 계획을 현 수준보다 확연히 높게 책정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공시를 이행하는 것이 의무가 아닌 자율인 부분도 증권사의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으로 풀이된다. 또 증권가에서도 기업들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이행할지 결정하는 핵심 사안으로 꼽히는 밸류업 기업에 대한 세제 지원안을 큰 혜택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도 내부적으로 나오고 있다.
사업연도 종료일까지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한 상장사에 직전 3년 평균보다 주주환원을 5% 넘게 늘릴 경우, 그 초과분의 5%를 법인세액에서 떼주는 주주환원 촉진세제가 대표적이다. 배당 등을 통해 주주환원율을 5% 이상으로 책정하면 법인세를 그만큼 공제해 주는 형태이지만, 주주에게 배당되는 배당금 증가분에 비해 법인세 감면 폭이 최대 5%에 불과해 공시 참여 유인책으로 부족하다는 해석이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를 이행하지 않은 한 증권사 관계자는 "사실상 인센티브가 부족하다고 보는 분위기가 있다. 상장사들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할 때 핵심적으로 볼 사안이 세제지원인데 기업별로 재정건전성이 다르다 보니 단지 법인세 감면을 받으려고 배당 등을 크게 늘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주주환원적인 부분은 자체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기업 경영 차원에서는 공시로 예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