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좀 달라"…폭염에 쓰러지는 건설노동자 '작업중지권' 도마위


최근 6년간 온열질환 산업재해 승인 건수 147건 중 70건 건설업
근로자 '작업중지권' 도입 목소리 높아져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으로 쓰러지는 건설노동자들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난달 8일 오전 서울 성북구 장위4구역 주택정비사업 건설현장에서 폭염 대응 관련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뉴시스

[더팩트|이중삼 기자] 기후변화로 여름철 폭염이 빈번해지면서 온열질환으로 쓰러지는 노동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최근 6년간(2018년~2023년) 온열질환에 따른 산업재해 승인 건수는 147건에 달한다. 이중 건설업이 70건으로 전체의 47.6%를 차지한다. 제조업 22건(14.9%)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수치다. 문제는 온열질환으로 인한 산업재해가 줄기는커녕 해마다 늘고 있다는 점이다. 근로복지공단이 지난 6월 국회에 제출한 '온열질환 산업재해 승인 현황'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해당 산재 승인 건수는 2021년 19건에서 2022년 23건, 지난해에는 31건으로 늘었다. 올해 여름만 해도 온열질환 산업재해가 최소 12건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작업중지권 법제화 등 건설노동자 보호를 위한 실효성 있는 예방대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건설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이 지난 7월 말 건설노동자 157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동자 15%가 물조차 제공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폭염특보 발령 시 매시간 10분~15분 규칙적으로 휴식을 취하는 노동자들은 18.5%에 그쳤다. 특히 폭염경보 때 옥외작업을 중지하도록 돼 있지만, 80.6%는 별도의 중단 없이 일을 했다.

지난달 1일 국회의원회관 제4간담회실에서 열린 '폭염기 건설노동자 사망재해 예방을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국회토론회'에서 건설노동자 문여송 씨는 "뜨거운 태양 아래 건설현장 노동자들은 열사병과 탈수 같은 온열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며 "아침 합동 조회시간 안전담당자는 폭염주의보·경보 시 강제 휴식을 진행하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현장에서의 강제 휴식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2조에 따르면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566조에서는 '사업주는 근로자가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에서 작업해 열사병 등의 질병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적절하게 휴식하도록 하는 조치를 해야 한다'고 돼있다.

고용노동부는 대표적 폭염 취약 업종인 건설업·조선업·택배 등의 사업장을 온열질환 발생 우려 사업장으로 지정해 중점관리하고 있다. 예방가이드라인을 배포하는 한편, 매년 여름철 폭염대책기간을 운영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여름철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예방가이드'에 따르면 사업장에서는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이면 시간당 10분, 35도 이상이면 15분 그늘 등에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 35도가 넘어가면 무더위시간대인 오후 2시~5시에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옥외작업을 중지하도록 권고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건설노동조합이 지난 7월 말 건설노동자 157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동자 15%가 물조차 제공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팩트 DB

◆ 실효성 확보 위한 행정 규칙 형식 세부 지침 마련 필요

문제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사항이라는 점이다. 예방가이드라인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건설동향브리핑 제974호'에 따르면 22대 국회 출범 이후 총 25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발의됐다. 이중 11건은 폭염을 비롯한 기상이변 시 현장근로자 보호를 위해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 의무규정, 근로자 작업중지권 도입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일례로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의 '보건조치'(제39조) 조항에 폭염·한파에 의한 근로자의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한 사업주의 보건조치 의무를 법률에 명확히 규정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근로자의 작업중지'(제52조) 조항에 폭염·한파·태풍 등 기상이 근로자의 안전과 생명에 위협을 끼칠 경우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을 도입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측은 "22대 국회 출범 이후 다수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입법된 상황"이라며 "앞서 중앙행정기관에서 발표한 폭염 대책 실효성 확보를 위해 행정 규칙 형식으로의 위임과 세부 지침 등의 마련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산업안전보건법 상 폭염이 건설공사 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사유로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악천후로 볼 수 있는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또 작업중지권 실행 시 공사기간 연장과 비용 부담 이 불가피한 탓에 폭염에 관한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으면 시공사·감리단·발주자 간 책임소재에 관한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고용노동부의 온열질환 예방가이드는 체감온도를 기준으로 폭염 단계별 대응 요령을 제시함에 따라 작업일수 산정 시 이를 고려할 수 있도록 관련 기준에 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건설공사에서 변수가 아닌 상수로 감안하는 사회적 인식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용노동부는 대표적 폭염 취약 업종인 건설업·조선업·택배 등의 사업장을 온열질환 발생 우려 사업장으로 지정해 중점관리하고 있다. /더팩트 DB

◆ 고용노동부, '신중 검토 필요' 의견

고용노동부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 입법영향분석-기후여건에 따른 작업중지 규정을 중심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작업중지권을 강화하면 장기적으로 노동 생산성을 감소를 막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폭염특보와 같은 재난경보를 기준으로 획일적인 작업중지 명령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며 "산업현장의 막대한 피해 발생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폭염·한파에 따른 작업중지가 이뤄진다고 가정할 경우 연간 20일의 작업중지일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생산량 감소, 납기일 지연, 수출 경쟁력 저하 등 부작용이 심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도 이미 관련 규정이 있다는 점을 들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고용노동부 장관의 작업중지는 급박한 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즉시 강제로 '필요 최소한도로 이뤄져야 한다는' 여야 합의를 통해 중대재해가 발생한 때에만 한정해 할 수 있도록 한 취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작업중지를 사전 예방적으로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해당 기후 여건에서 작업하는 근로자의 생명과 안전에 위해 우려가 크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적용하는 것에 대한 적절성 여부도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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