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즘이라는데 '전기차 시대' 진짜 오나요?…관전 포인트 셋


가격 하락·美 대선·유연한 정부 정책 등 주목

현대자동차가 지난 6월 26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2024 부산모빌리티쇼 프레스데이 행사에서 경형 전기차 캐스퍼 일렉트릭을 발표하고 있다. /장윤석 기자

[더팩트ㅣ최의종 기자]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은 미국 컨설턴트로 활동한 제프리 A. 무어가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 지층 사이에 큰 틈을 의미하는 말이었지만, 최근에는 대중화되기 전 수요가 정체하는 의미로 쓰인다. 글로벌 탈탄소 흐름 속 등장한 전기차는 캐즘으로 고전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을 비롯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전기차 투자에 진심을 보였지만, 현재는 캐즘으로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캐즘 주요 원인으로 부담스러운 가격과 화재가 발생하면 쉽게 진압하기 어려운 점 등이 꼽힌다. 국내에서는 인천 화재로 포비아(공포증)까지 겹쳤다.

그렇다고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전기차에 대한 끈을 놓은 것은 아니다. 이차전지 산업도 업황 둔화를 겪지만, 기술개발은 꾸준히 이어지는 상황이다. 전기차 시대가 반드시 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오른쪽)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지난 10일(현지 시간)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ABC 주관 TV 대선 토론에서 발언하고 있다. /AP·뉴시스

◆"해리스냐, 트럼프냐"…전기차 산업 '변곡점' 미국 대선

올해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전기차 산업의 중요한 이벤트라는 의견이 있다. 캐즘 장기화의 리트머스지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전기차 산업에 대한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인식이 대체로 상반되기 때문이다.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되면 바이든 행정부 친환경 정책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전기차를 지원하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정책 방향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해리스 부통령은 상원의원 시절 탄소 배출 제로 차량 의무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다만 해리스 부통령은 최근 전기차 의무화를 지지하지 않는다며 친환경 공약 입장을 철회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내연기관 중심 자동차 산업을 지키겠다며 전기차 산업 퇴보를 예고했다. 그는 지난 5일 뉴욕 이코노미클럽 연설에서 "내 계획은 그린 뉴딜 종료"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하면 전기차 캐즘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전기차와 바늘과 실 관계 같은 배터리 산업 둔화도 길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전기차가 대세라는 점에서 대선 결과가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우선 미국 대선을 포함한 글로벌 불확실성에 하이브리드차 라인업 확대 등을 대처 방안으로 삼았다. 현대차는 다음 달 가동을 앞둔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 HMGMA에서 하이브리드차도 생산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지난달 28일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현재 7개 차종에 적용된 하이브리드차를 14종으로 늘리고 제네시스 전 차종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보인다고 말했다. 전기차 캐즘 장기화를 대비해 하이브리드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한다는 전략이다.

중국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 중형 전동화 세단 실(SEAL). /BYD 누리집

◆격화하는 가격 경쟁…내연기관 수준까지 떨어질까

캐즘 원인 중 하나로 '고가'인 점 꼽힌다. 한국환경공단이 지난 5월 공개한 전기차 및 충전 인프라 보급 확대를 위한 사용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51.2%는 구매 당시 가격이 비싸다고 봤다. 31.8%가 적정하다고, 17.0%만 저렴하다고 답했다.

차량 구매에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이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은 79.9%를 기록했다. 전기차를 구매하는 데 보조금 지원 영향이 큰 셈이다. 설문조사는 전국 17개 시도에 등록된 전기차 사용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 19일~올해 1월 4일까지 인터넷 조사로 진행됐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도 소비자가 전기차를 구매하는 데 가격 부담을 느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상황이 점점 달라지고 있다. 중국 업체가 정부 보조금을 무기로 글로벌 시장에서 저가 공세를 벌이고 있어서다.

중국 업체는 저가 공세로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가 발표한 '중국 전기차 산업의 글로벌 확장과 시사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국 브랜드의 중국 제외 세계 시장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33.9% 증가한 41만9946대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는 대중성 있는 저가 모델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올해 현대차는 캐스퍼 일렉트릭을, 기아는 EV3 등 저가형 모델을 출시했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최근 출시 이후 지난달 1439대가 팔리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환경부 2025년 예산안 주요 사업에 따르면 내년 전기차 보조금 단가는 승용·화물 각 100만원씩 줄어든 300만원·1000만원이다. /임영무 기자

◆'축소 기조' 보조금…'산업 경쟁력' 강화 정책 내놓을까

글로벌 완성차 업체 2위인 폭스바겐그룹은 지난 2일 독일 공장 폐쇄를 검토한다고 밝혔다. 중국 업체가 저가 공세로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고, 캐즘으로 전동화 전환 투자 비용이 손실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독일 정부는 지난해 말 폐지한 전기차 보조금 일부를 되살리기로 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전기차 보조금 단가를 축소하는 추세다. 환경부 2025년 예산안 주요 사업에 따르면 내년 전기차 보조금 단가는 승용·화물 각 100만원씩 줄어든 300만원·1000만원이다.

다만 안전 관리에 도움이 되는 기능을 탑재했는지 따져 '차등' 지급하는 업무처리 지침을 올해 말에 확정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캐즘 상황에서 보조금 축소 또는 폐지 기조를 유지하면, 산업 경쟁력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전기차 인식 개선과 관련한 정책 여부도 관심이다. 인천 화재 이후 포비아 확산에 정부가 배터리 셀 제조사 정보 공개 등을 의무화한 것처럼 전기차 산업에 대한 세심한 정책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가격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보조금을 받지 않고 내연기관과 비슷한 가격 수준을 이루는 시기가 몇 년 안에 도래할 수 있다"라며 "고급 모델과 별개로 가격 경쟁력 있는 제품이 해마다 2~3가지씩 나오면 캐즘이 끝날 수 있다"라고 봤다.

이어 "정부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전기차 화재의 경우 배터리 셀 제조사 공개만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왼다"며 "폐쇄 공간 공포증을 없애는 등 종합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bel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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