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문은혜 기자] 당정이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공정거래법·대규모유통업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개정안에는 그동안 대금정산 기한 등이 법으로 정해지지 않았던 오픈마켓들을 '대규모유통업자'로 지정해 본격 규제하겠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논의가 사태의 본질을 벗어났다며 우려하고 있다. 정산일을 지키지 못해 벌어진 문제가 정산일이 길어져서 발생한 문제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정산주기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이커머스 업계의 발전을 오히려 저해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9일 오전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 및 티몬·위메프 사태 재발 방지 입법 방향 당정협의회'를 열고 공정거래법·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을 논의했다. 여당에서는 김상훈 정책위의장과 윤한홍 정무위원장 등이 참석했고 정부에서는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남동일 공정위 사무처장 등이 자리했다.
당정은 티메프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자사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최혜대우 요구 등 플랫폼의 반경쟁행위 4가지를 규정한 후 과징금을 상향하고 임시중지명령을 도입하기로 했다. 또한 현재 대규모유통업법 규율 대상에서 제외돼 있는 온라인 중개거래 플랫폼들을 규율 대상에 넣고 정산기한도 명시하기로 했다.
이커머스 업계는 이 중에서도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에 주목하고 있다. 당정이 일정 규모 이상의 온라인 중개 거래 플랫폼, 사실상 오픈마켓들을 대규모 유통업자로 지정해 규제하겠다고 밝혀서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으나 △중개 거래 수익 100억원 이상 또는 중개 거래 금액 1000억원 이상(1안) △중개 거래 수익 1000억원 이상 또는 중개 거래 금액 1조원 이상(2안) 기준에 따라 해당 사업자를 대규모 유통업자로 규율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에는 G마켓, 11번가 등 대부분의 오픈마켓 사업자들이 모두 포함될 전망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일정 기한 내 정산 의무'와 '판매 대금의 일정 비율 별도 관리' 등의 규제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협의회에서는 정산 기한은 △구매확정일로부터 10일 또는 20일로 하는 안 △월 판매 마감일로부터 30일 이내로 하는 안 등 2가지가 제시됐다. 별도 관리 비율은 100% 안과 50% 안이 나왔다.
이를 통해 당정은 플랫폼 기업들이 이른바 '을'로 불리는 판매 사업자에 불공정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대규모유통업법으로 규제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규제가 될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산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발생한 티메프 사태의 본질이 정산일이 길어져서 발생한 문제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G마켓이나 11번가와 같은 대표적인 오픈마켓들은 이미 구매확정 이후 1~2일 안에 판매자 대금을 정산해주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오픈마켓 시장에서 판매자 확보는 곧 플랫폼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이에 오픈마켓들은 이미 정산 주기를 더 앞당기기 위해 자발적으로 경쟁하는 상황이다.
한 오픈마켓 관계자는 "시장 특성상 판매자들에 대한 서비스가 나쁘면 도태될 수 밖에 없다"며 "이미 하루 이틀 안에 이뤄지고 있는 정산 서비스가 법적 규제로 인해 오히려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규제가 중소 이커머스 업체들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커머스는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아 중소 스타트업들도 자신만의 기술이나 전략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장이었다"며 "그러나 이같은 규제들이 시장에 대한 진입장벽을 알게 모르게 높여 결국 기존 대형 플레이어들에게 유리한 분위기로 흘러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이커머스 관계자는 "이커머스 사업이라고 다 같은 방식이 아니다"라며 "대부분이 직매입과 오픈마켓 방식이 혼재돼 있어 이같은 규제를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맞는지는 좀 더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안은 아닌 만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 관련 정산 기한·별도 관리 비율 등에 대해 이달 중 공청회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한 뒤 관련법 개정안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