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이중삼 기자] 한국은행이 최근 서울 집값 상승세를 끊어낼 방안으로 지역별 학령인구를 반영해 신입생을 선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서울에 집중된 과도한 교육열을 지역으로 분산시키면 치솟는 서울 집값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명문대를 위한 입시경쟁 과열은 사회·경제적 지위의 대물림을 심화시키는 등 구조적 문제도 일으킨다는 지적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7일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교육열에서 파생된 끝없는 수요가 강남 부동산 불패 신화를 고착시키고,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교통·상권·문화시설·일자리 등 복합적인 환경 요인들이 집값을 결정한다며, 이 같은 대안이 강남권 집값 상승세를 완화시킬 수 있다고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한국은행은 최근 발표한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방안' 보고서에서 서울대학교 등 일부 상위권대학교에 '지역별 비례선발제' 도입을 제안했다. 입시경쟁의 악순환을 깨는 과감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을 반영해 신입생을 선발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서울 집값 상승·수도권 인구집중 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은 입시경쟁이 서울 집값 상승을 초래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세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매매 상대가격이 5대 지방광역시 대비 5배를 넘는다는 점, 강남·서초구로의 초·중생 전입률이 지난 2011년 1.4%에서 지난해 2.6%로 치솟은 점, 지난해 강남·서초구의 학급당 초·중생 수가 25.6명으로 전국 평균 대비 4명 더 많다는 점 등이다.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교육 목적의 이주 수요가 두드러지고 있는 가운데, 집값 상승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입시경쟁이 심화되면 사교육 중요도가 높아지고 결국 사교육 인프라가 갖춰져 있는 강남권으로 몰리게 돼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는 얘기다.
이 총재는 "강남 부동산 초과 수요의 근저에는 입시경쟁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며 "입시경쟁이 치열해지고 사교육이 중요해지다 보니 자녀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서울로, 강남으로 가고, 이후 다음 세대가 똑같은 목적으로 진입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치동 학원들이 전국으로 분산되고, 지방의 중·고교생이 입시를 위해 서울로 이주해올 필요가 없다"며 "매년 학기 초가 되면 각 지역 고등학교의 입학 환영회 플래카드가 대학 정문에 걸리는 대학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 27조1000억원…전년比 4.5%↑
대한민국에서 사교육비 문제는 뿌리가 깊다. 부모들은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사교육비 부담에도 지출을 늘리고 있다. 명문대 진학은 곧 좋은 일자리로 이어진다는 통념에서다. 실제 한국노동연구원의 '대학서열과 생애임금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명문대 졸업자들은 서열이 낮은 대학 졸업생들보다 노동시장 진입 시 약 14% 높은 임금을 받았다. 40세~44세가 되면 46.5%까지 격차가 벌어졌다. 특히 이들은 대기업 정규직 등으로 취업하는 비율도 높았다.
한국노동연구원 측은 "명문대 졸업생들의 네트워크는 다른 대학 졸업생들에 비해 촘촘하게 형성돼 있다"며 "이를 통해 노동시장에서의 유용한 정보를 얻고 양질의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고 전했다.
때문에 명문대 진학을 위해 사교육비에 쓰는 액수도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통계청·교육부의 '2023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은 27조1000억원으로 전년(26조원) 대비 4.5% 증가했다. 전체학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3만4000원으로 전년 대비 5.8% 늘었다. 초등학교는 39만8000원, 중학교는 44만9000원, 고등학교는 49만1000원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각각 6.8%, 2.6%, 6.9% 늘어난 수치다.
사교육비 지출은 소득 수준에 따라 큰 차이를 나타냈다. 지난해 고등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를 소득수준별로 살펴보면 월 소득 800만원 이상의 고소득층은 96만5000원으로 월 소득 200만원 미만의 저소득층(37만5000원) 대비 2.6배 많이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거주지역별로도 서울이 광역시·중소도시를 압도했다. 이런 차이는 실제 최상위권 진학 결과로 이어졌다. 서울대학교로 보면, 서울 출신 학생은 전체 일반고 졸업생 가운데 16%에 그쳤지만, 서울대학교 진학생 중에는 33%를 차지했다. 특히 소득수준이 높은 강남3구 졸업생은 격차가 더 큰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노동연구원 측은 "높은 사교육비는 학생 본인뿐만 아니라, 학부모들도 입시경쟁의 한 축을 이루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입시경쟁이 더 치열해진 것은 대학교육 자체에 대한 수요가 아닌, 상위권 대학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사교육 환경은 집값 상승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지형공간정보학회가 발행한 '사교육 밀집 환경이 아파트 가격 형성에 미치는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사교육 환경이 아파트 매매가격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나아가 부동산 정책을 수립할 때 교육환경과 사교육 밀집도를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실제 서울 아파트 가격이 24주 연속 오름세인 반면, 지방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교육환경도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국부동산원의 '9월 첫째 주 주간 아파트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0.21% 올랐다. 24주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주에도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지역이 집값 상승을 주도했다. 반면 지방 아파트 매매가격은 0.02% 떨어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이 제안한 방안에 대해 취지는 공감하면서도, 강남권 집값 상승세를 완화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집값을 결정하는 요인 중 자녀의 교육환경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교통·상권·문화시설·일자리 등 여러 환경 요인들이 더해져 집값이 형성된다는 의견에서다. 특히 지역별 비례선발제 도입에 대해서는 대학, 고등학교, 학부모, 학생 등 이해 당사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