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한림 기자] SK와 두산그룹이 사내 계열사 합병 등을 통해 대대적인 지배구조 개편에 나섰지만 온도차를 띠고 있다.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이 주주가치 훼손을 이유로 반대표를 던지면서 합병에 반발하는 주주들의 집단주주행동도 야기한 분위기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쪽은 두산그룹이다. 앞서 합병 관련 주주총회(주총)를 연 SK그룹이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지난 27일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안을 통과시키면서 우려를 한시름 덜었기 때문이다. SK그룹의 합병 통과 소식이 주총을 앞둔 두산그룹의 합병안에 반발하는 주주들의 결속력을 더욱 키웠다는 시선도 일부 나온다. 국민연금이 두산그룹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위원회(수책위)는 다음 달 두산그룹의 사업 개편 관련 임시 주총 안건을 논의하겠다고 요청했다. 수책위원장 또는 수책위원 9명 중 3명이 요청하면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회는 두산그룹의 합병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할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국민연금 수책위가 논의할 내용은 두산로보틱스가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분할해 두산밥캣을 자회사로 편입하는 안건들을 포함한다. 두산그룹의 '두산로보틱스와 분할합병계약 체결 승인의 건', 두산로보틱스의 '두산에너빌리티와 분할합병 승인의 건', '두산밥캣과 포괄적 주식교환 승인의 건', 두산밥캣의 '두산로보틱스와 포괄적 주식교환 승인의 건' 등이며 모두 다음 달 25일 각 사의 임시 주총을 통해 결의할 예정이다.
이중 두산에너빌리티의 주총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국민연금이 두산그룹의 합병안에 반대표를 던진다면 최대주주 지분이 낮고 국민연금 보유지분이 높은 두산에너빌리티가 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두산에너빌리티 최대주주는 30.39% 지분을 보유한 그룹 지주사 두산이다. 국민연금은 6.94%로 2대주주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 소액주주 지분도 63.61%에 달한다. 같은 합병 주체인 두산로보틱스는 그룹 지주사인 두산이 68.19%의 지분율을 기록하고 있고, 두산밥캣은 두산에너빌리티가 46.08%의 지분율을 보유해 최대주주의 보유 지분의 힘이 절대적인 것과 대조적이다.
합병 결정에 반대한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여부도 관건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매수한도를 6000억원으로 설정했으나 국민연금이 모든 지분을 주식매수청구권으로 행사한다면 두산이 사들여야 할 주식 매수 규모는 9000억원을 넘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소액주주도 집단행동을 통해 반대표를 던져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한다면 사실상 두산그룹의 합병 계획은 무산될 전망이다. 국회에서 '두산밥캣 방지법'이 발의되는 등 올해 정부가 추진한 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인 밸류업 기조에 반하는 사례의 중심이 된 여론도 무시하기 어렵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두산은 현행 자본시장법을 따라 시장 주가에 의해 합병비율을 계산했다고 하지만, 계열사 간 합병 시 10%를 증감할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합병비율에 대한 이사회의 충분한 설명도 제공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편 두산밥캣과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은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를 통해 두산그룹 합병안에 반대하는 단체행동에 돌입했다. 또 주주들은 지난 22일 입장문을 통해 "국민연금이 즉시 행동에 나서도록 촉구하겠다"고 밝혔으며, 최근 수원지방법원 등에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의 주주명부 열람 및 등사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 수책위가 SK그룹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에 비춰봤을 때 두산그룹의 사업 구조 개편에도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며 "SK와 달리 두산의 경우, 소액주주들이 집단행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펼치는 등 반대 의견을 확실히 피력하고 있는 것도 살펴볼 전망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