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문은혜 기자] 일명 '햇반 전쟁'이라 불렸던 쿠팡과 CJ제일제당의 납품가 갈등이 1년8개월 만에 종결됐다. 갈수록 심화되는 경기 침체와 소비 둔화로 제조사도 유통사도 '생존' 자체가 중요해지자 양사가 실리를 위해 대승적 타협을 이뤄냈다는 평가다.
1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쿠팡과 CJ제일제당은 이날부터 직거래를 재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은 쿠팡 로켓배송을 통해 햇반, 비비고, 스팸 등 CJ제일제당의 주요 상품들을 다시 받아볼 수 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우선 비비고 만두를 비롯해 비비고 김치, 고메 피자 등 냉동, 냉장 및 신선식품 판매가 쿠팡에서 재개된다"며 "햇반과 스팸, 비비고 국물요리 등 상온제품은 오는 9월 말까지 순차적으로 판매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봉합되기 어려울 것 같던 양사 갈등이 결국 화해로 마무리된 배경에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부진, 유통 채널의 경쟁 격화 등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 특히 소비자들의 지갑 사정과 판매량이 직결되는 CJ제일제당이 감소하는 국내 매출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쿠팡과의 직거래를 재개하기 바로 전날인 지난 13일 CJ제일제당은 올해 2분기 국내 식품사업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줄었다고 공시했다.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 감소한 2조751억원, 영업이익은 4.8% 줄어든 1359억원을 기록했다. K-푸드 인기를 바탕으로 해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과는 상반된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내수가 불황인데다 이런 분위기가 장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CJ제일제당 내부적으로는 오프라인 사업부서가 비상인 상황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CJ제일제당 입장에서는 유통 채널을 하나라도 더 늘리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 됐다.
2022년 12월 쿠팡과의 직거래를 중단한 CJ제일제당은 이후 다른 유통채널인 신세계, 네이버, 컬리 등과 연합을 강화하며 판매망을 확대해왔다. 심지어 올 초에는 중국 이커머스인 알리익스프레스에도 입점해 햇반 등을 최저가로 판매했다.
그러나 이같은 시도에도 쿠팡의 빈자리를 메우기에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평가다. 유통업계는 과거 햇반 연간 매출의 10% 수준인 약 900억~1000억원이 쿠팡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CJ제일제당 자사몰인 CJ더마켓에서 올린 매출의 3배가 넘는 금액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갈수록 지갑을 닫는 상황에서 CJ제일제당이 쿠팡의 볼륨을 무시하고 자존심 싸움만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쿠팡도 중국 이커머스들의 국내 공세가 격화되는 상황에서 햇반 등 인기상품을 판매하는 CJ제일제당을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한 유료멤버십 가격 인상에 따른 소비자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국내에서 잘 팔리는 제품군을 확보해 상품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쿠팡이 CJ제일제당과의 화해의 물고를 트기 위해 올해 초 쿠팡플레이가 주최한 LA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미국 프로야구(MLB) 공식 개막전에 CJ그룹 수뇌부를 초청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당시 강한승 쿠팡 대표는 손경식 CJ그룹 회장과 강신호 CJ제일제당 부회장, 김홍기 CJ주식회사 대표, 신영수 CJ대한통운 대표와 나란히 앉아 경기를 관람했다. 쿠팡 관계자는 "올해 초부터 CJ제일제당과의 직거래 협상이 급물살을 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유통사, 제조사 할 것 없이 생존을 위한 전방위적 협업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쿠팡과 CJ제일제당의 사례가 생존 앞에서는 어제의 적도 오늘의 동지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준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