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한림 기자]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앤컴퍼니(한앤코)가 올해 온탕과 냉탕을 오가고 있다. 잠재성이 높은 기업을 인수해 엑시트(투자금 회수)까지 이어지는 발판이 된 1, 2, 3호 블라인드 펀드에 이어 최근 조성한 4호 펀드에서 역대 최대 기록을 세운 반면 한온시스템 등 올해 목표했던 굵직한 매각 작업은 난항을 겪고 있어서다.
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앤코는 지난달 4호 블라인드펀드 조성을 마무리했다. 총 규모는 애초 펀딩 목표금액인 4조4000억원을 웃돈 4조7000억원으로,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단일 국가 기준 역대 최대치를 달성해 시장 주목도를 높였다.
또한 4호 펀드 조성에서 출자자(LP) 간 신뢰가 바탕이 된 점도 이목을 끌었다. 3호 블라인드 펀드에 1억 달러(약 1340억원) 이상을 출자한 출자자(LP) 중 93%가 4호 펀드에 후속 출자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도 한앤코가 잇따른 대규모 펀드 조성 성공에 대한 배경을 적절한 투자와 경영권 참여로 기업가치를 높여 구체적 성과를 낸 결과로 보고 있다. 3호 펀드는 2019년 총 3조8000억원 규모로 결성된 3호 펀드는 납입금 대비 분배율(DPI) 30%를 넘겼으며 내부수익률(IRR)도 31%를 기록했다. 2021년 홍원식 회장의 남양유업 인수 역시 3호 펀드 조성으로 발생한 성과로 꼽힌다.
인수합병(M&A) 시장에서도 한앤코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미국의 에스테틱 의료기기업체 사이노슈어, SKC의 파인세라믹 사업부를 각각 3500억원, 3300억원에 인수했기 때문이다. 이중 사이노슈어는 지난해 한앤코가 인수 후 자발적 상장폐지를 이룬 동종업체 루트로닉과 합병하면서 '볼트온(Bolt-on, 인수 기업 가치 제고 위한 연관 기업 추가 인수)의 귀재'라는 별칭도 증명했다.
그러나 올해 한앤코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은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그간 신뢰로 조성된 펀드 자금을 한상원 한앤코 대표의 노하우가 집약된 전략으로 적절한 투자를 단행했다는 평가를 받아왔으나, 올해 유독 엑시트가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는 까닭이다.
올 초 IB업계에서는 한앤코가 올해 10조원가량의 매각을 실현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듬해 분위기를 결정하는 지난해 말, 앞서 3호 펀드로 모인 투자금 중 3800억원가량을 들여 매수한 SK에코프라임(前 SK케미칼 바이오에너지사업부)을 싱가포르계 사모펀드사 힐하우스캐피탈에 5000억원에 매각하는 등 성공적인 엑시트를 이룬 직후였기 때문에 전망은 더욱 밝았다.
매각 리스트에 오른 기업들의 크기도 굵직했다. 오랜 기간 공들인 한온시스템을 비롯해 3호 펀드에서 투자한 SK해운 유조선사업부, 10년 전 2호 펀드로 인수한 중고차업체 케이카 등 장기 포트폴리오들을 올해 리스트에 올려놓고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런데도 8월 초 기준 한앤코의 완전한 매각 실현은 모두 '시계 제로' 상태다. 원매자가 여전히 나타나지 않은 SK해운과 케이카는 고사하더라도 믿었던 한온시스템마저 매각 작업에 애를 먹고 있어서다.
한온시스템 매각은 인수자인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국타이어)와 지난 5월 주식매매계약(SPA)까지 체결했던 사안이 지연된 터라 더욱 아쉬운 모양새다. 한앤코는 SPA에 따라 이달 3일 한국타이어와 유상증자가 포함된 한온시스템 매각 본계약을 체결하려 했으나 이날 한국타이어가 대금 납부를 이행하지 않으면서 매각에 제동이 걸렸다.
시장은 한온시스템의 급락한 주가를 매각 지연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SPA 이전과 이후 주가가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에 몸값에 양자간 이견이 발생했다는 해석에서다. 한온시스템은 지난 6일 4010원, 시가총액은 2조1405억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2015년 한앤코의 한온시스템 인수가(2조7500억원)보다 낮고, 주가 역시 한국타이어와 SPA 계약서 상 주가인 주당 1만250원 대비로는 무려 60.87% 내려앉아 있다.
한앤코는 양사의 SPA가 구속력이 있는 바인딩 계약이기 때문에 지연이 될 순 있으나 계약 자체가 무산될 여지는 없다는 태도다.
다만 시장에서는 몸값 이견이 지속한다면 한온시스템 매각 건은 기존 유상증자 가액 조정 등 변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 경우 한앤코가 계획한 몸값으로 받아내지 못하거나, 일부 소액주주의 반발이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
이렇다 보니 2016년 1호 펀드를 통해 투자했다가 주가 하락 등 여파로 매각에 번번이 고배를 마신 쌍용C&E(前 쌍용양회) 사례도 재조명된다. 쌍용C&E 매각을 타진하던 한앤코는 대한시멘트 등을 추가 인수한 볼트온 전략은 물론 2022년 펀드 이전을 통해 LP를 새로 바꾸는 등 매각을 위한 기업가치 향상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결국 지난달 공개매수에 따른 자발적 상장폐지를 마친 상황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한앤코가 대규모 펀드 조성을 연이어 실현할 수 있던 까닭으로는 그간 실패라고 단정할 만한 거래가 경쟁사 대비 적다는 시장 인식이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펀드에 직접 참여하는 출자자들 사이에서도 신뢰를 보내던 이유"라면서도 "올해 매각에 공들인 기업들의 면면이 장기 보유 중인 기업이기도 하고 결과적으로는 완전한 매각 사례가 지난해 SK에코프라임 이후 없기 때문에 엑시트 부문에서는 다소 아쉽다는 분위기도 없지는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