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락 기자] 글로벌 전기차 캐즘(수요 둔화) 현상이 장기화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가 흔들리고 있다. 업계 1위인 LG에너지솔루션이 2분기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보조금을 제외하면 적자를 기록했을 정도로 산업이 얼어붙은 모양새다. 문제는 대응 여력이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비상 경영을 선언하며 위기 극복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9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전날 2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했다. 결과는 매출 6조1619억원, 영업이익 1953억원으로,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각각 29.8%, 57.6% 급감했다. 특히 IRA 첨단 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를 제외하면 적자를 기록했다. 제도에 따른 택스 크레딧은 4478억원으로, 이를 빼면 영업손실 2525억원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1분기에도 사실상 적자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이 1573억원으로 집계됐는데, AMPC를 제외하면 영업손실 316억원이었다. 이처럼 회사 실적 부진이 이어지는 것은 전기차 캐즘 영향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 제너럴모터스가 올해 전기차 생산량을 기존 20만∼30만대에서 20만∼25만대로 하향 조정하는 등 전방 산업인 전기차 시장이 주춤하고 있다. 주요 원자재 가격 하락에 따른 판가 하락 등도 부진의 배경 중 하나다.

이는 다른 기업들이 피해 갈 수 있는 리스크가 아니다. 아직 2분기 실적을 공개하지 않은 삼성SDI와 SK온 역시 저조한 실적을 낼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SDI는 전년 동기보다 10% 이상 감소한 3000억원대 영업이익이 예상된다. 2021년 출범 이후 3년 동안 흑자 전환에 실패한 SK온은 2분기에도 3000억원대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의 고심이 깊어지는 이유는 뚜렷한 돌파구를 마련하기 어려워서다. 이를 토대로 증권사들은 급격한 전기차 수요 증가 없이는 하반기에도 반등이 어렵다는 취지의 전망을 내놓고 있다. NH투자증권은 "전기차 수요의 대대적인 회복에 기반한 본격적 반등보다는 최악을 지났다는 안도감에 기반한 제한적 반등을 예상한다"고 밝혔다. 키움증권은 "전기차 수요 감소를 고려해 LG에너지솔루션의 하반기 실적 눈높이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부정적 전망과 별개로 기업들은 투자 속도를 조절하고,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는 등 위기 극복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 등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섰고, 미국 애리조나 ESS 배터리 전용 생산 공장을 착공 두 달 만에 중단하기도 했다. 삼성SDI와 SK온도 투자 효율성을 높일 방안을 고민하는 동시에 LFP 배터리, ESS 배터리 등 새로운 수요를 찾는 중이다.

각 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위기 속, 흔들리는 내부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 목소리를 적극 내고 있다. 먼저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지난 4일 구성원에게 'CEO 메시지'를 보내며 "과거 영광에 사로잡히지 말고 사업과 제품의 포트폴리오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며 조직 전체의 혁신을 가속화해 나가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최윤호 삼성SDI 사장은 지난 1일 54주년 창립기념식에 참석해 "고속 성장을 기대했던 전기차와 배터리 시장의 일시적 성장세 둔화 등은 우리가 맞이한 새로운 위기"라며 "이러한 위기를 반드시 극복하고 도약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전고체 배터리와 46파이 원통형 배터리, 건식극판 등 배터리 신기종·신기술의 적기 개발을 비롯해 주력 제품인 프리미엄급 전기차용 배터리부터 LFP 배터리 등 볼륨향 제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라인업 구축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SK온은 최근 '비상 경영'을 선언했다. 적자의 늪에 빠진 위기 상황에 대한 책임감을 강화, 극복 의지를 천명하기 위해 흑자 전환까지 모든 임원의 연봉을 동결하기로 했다. 임원들의 각종 복리후생 제도와 업무 추진비도 대폭 축소한다. 물론 장기적 성장을 위해 연구·개발 투자는 최대한 지원할 방침이다. 이석희 사장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각오로 각자의 위치에서 최고 성과를 만드는 데 힘을 모으자"며 "현재의 위기는 오히려 진정한 글로벌 제조 기업으로 내실을 다지는 기회"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 해법을 내놓을 수 없는 배터리사들은 회복의 기준점을 멀리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장기 불황에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게 기본 마인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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