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서다빈 기자] 90억원 상당의 비자금을 조성,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장원준 전 신풍제약 대표의 항소심 선고가 연기됐다. 오너 부재가 길어지면서 신풍제약의 수익성 개선 전략이 힘을 받지 못하는 모습이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오는 11일로 예정돼 있던 장원준과 신풍제약 법인의 항소심 선고가 연기됐다. 항소심 선고는 오는 9월 12일 오후에 열릴 예정이다.
신풍제약의 창업자 고(故) 장용택 회장의 아들인 장원준 전 대표는 2009년 3월 대표이사 자리에 올라 회사를 이끌었으나, 2011년 리베이트와 분식회계 등 여러 논란에 휩싸이며 2년만에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장원준 전 대표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보였으나 2015년 부동산 임대회사 '송암사'를 설립했다. 장원준 전 대표는 송암사를 설립하고 보유했던 신풍제약 주식을 현물출자하며 신풍제약 최대주주에 올라섰다. 현재 신풍제약의 최대주주는 지분 24.2%를 보유중인 송암사다. 송암사 최대주주는 지분 72.91%를 보유한 장원준 전 대표다.
오너의 부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신풍제약의 수익성도 악화하고 있다. 신풍제약은 최근 3년 연속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신풍제약은 2020년 영업이익이 78억원이었으나 2021년 143억원, 2022년 340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으며 지난해에는 47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 폭이 점점 커지고 있어 실적 개선이 절실한 상황이다.
신풍제약은 실적 개선을 위해 최근 건강기능식품(건기식) 신제품을 출시하며 건기식 사업 범위 확대에 나섰다.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신약 개발 대신 기존 인프라를 활용해 단기간에 수익을 낼 수 있는 건기식에 집중한 것이다.
다만 건기식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이며, 성장세도 둔화되고 있어 회사의 건기식 사업 확장이 실적 개선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칸타(KANTAR) 월드패널은 국내 건기식 시장이 성숙기를 지나 올해 정체기에 진입했다고 분석했다.
신풍제약의 미래를 책임질 주요 파이프라인(신약 개발 프로젝트)중 하나인 골관절염치료제 '하이알플렉스주(SP5M001)'는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로부터 품목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다만 이미 시장에 골관절염치료제가 많이 나오고 있어 일각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LG화학의 골관절염치료제 '시노비안'이 활발하게 판매되고 있으며 GC녹십자와 동국제약 등이 현재 골관절염 치료제를 개발 중에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다수의 제약사가 골관절염 치료제 시장에 진출을 선언하고 이미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제품도 있는데 해당 제품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성능이나 가격, 투여 방법 등에서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풍제약이 막대한 연구비용을 들인 말라리아 치료제 '피라맥스' 역시 부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피라맥스는 호흡기 치료제 특허 등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풍제약은 피라맥스의 적응증을 확대하고자 특허 등록에 나섰지만 특허청으로부터 2번의 거절을 당했다. 심사 결과에 불복한 신풍제약은 지난달 특허청에 세번째 특허 출원서를 접수했다.
피라맥스는 신풍제약의 실적 악화의 원인 중 하나다. 지난 2020년 피라맥스가 코로나19 치료제로 쓰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자 신풍제약은 연구개발비를 대폭 늘렸다. 신풍제약은 2020년 179억원, 2021년 303억원, 2022년 555억원의 연구비를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투자했다. 공을 들인것에 비해 유의미한 성과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이 밖에도 신풍제약은 지난달 식약처로부터 의약품 제조·품질관리기준(GMP)을 위반한 사실이 적발돼 행정처분을 받기도 했다. 신풍제약은 항생제 '린박탐주'를 제조·품질관리 기준서 및 지시서를 준수하지 않고 제조한 사실이 확인됐다. 신풍제약은 해당 의약품에 대해 제조업무정지 1개월 처분을 받았다.
장원준 전 대표가 경영에서 물러난 이후 회사는 전문경영인인 유제만 대표가 이끌고 있다.
유제만 대표는 지난달 열린 창립62주년 기념행사서 올해의 회사 목표로 △연구개발(R&D) 중심 제약사 △내수 판매 성장 △혁신신약 개발을 통한 세계시장 개척 △경영 개선 등 을 제시했다.
다만 장원준 전 대표가 항소심 선고에서도 실형을 받을 경우 회사 목표 달성에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신풍제약은 현재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혁신형 제약기업은 보건복지부가 신약 R&D·해외 진출 역량이 우수한 기업을 선정해 혜택을 제공하는 제도다.
혁신형 제약기업은 기업 임원이 횡령·배임·주가조작 등으로 벌금형 이상 선고 받는 경우, 임직원의 성범죄 등 비윤리적 행위가 적발되는 경우에도 인증이 취소될 수 있다. 혁신형 제약기업에서 제외될 경우 △국가 R&D 사업 우선 참여 △정책자금 우선 융자 △약가 결정 시 우대 △세제지원 △해외 제약전문인력 채용 지원 △연구시설 입지 규제 완화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
취재진은 장원준 전 대표의 재판과 송암사 등과 관련해 질문하고자 신풍제약 측과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한편, 장원준 전 대표는 지난 2008년 4월~2017년 9월까지 아버지인 고(故) 장용택 전 회장, 노 모 전무 등과 공모해 원재료 납품업체인 A사의 납품가를 부풀리거나 거래한 것처럼 조작해 차액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91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2016년 1월부터 2018년 3월까지 회사 재무제표를 거짓으로 작성해 공시한 혐의도 받고 있다. 장 전 대표는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