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이중삼 기자] 운반비 협상을 둘러싸고 레미콘 업계와 레미콘 운송 기사들이 갈등을 빚고 있다. 운송 기사들은 운반비 인상과 운송단가 단체협상을 요구하며 무기한 운송 거부 카드를 꺼내들었다. 업계는 이들이 노동조합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개인 사업자에 해당하는 만큼, 개별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협상이 빠르게 이뤄지지 않고 휴업이 장기화 될 경우 건설현장 혼란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노총 레미콘운송노동조합(레미콘 운송노조)은 지난 1일 성명을 내고 지난달 27일 휴업 여부 찬반투표 결과에 따라 무기한 휴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수도권 레미콘 사용자 단체에 수차례 통합교섭을 요구했지만, 이들이 교섭을 회피하며 통합교섭에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 이유다.
레미콘 업계에서는 운송 기사들은 노동조합법상 노동자 지위를 가지지 않은 개인 사업자이기 때문에 통합교섭에 나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앞서 고용노동부 산하 경기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레미콘운송노조를 노조로 인정하지 않는 결정을 내린 것이 근거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고용당국은 레미콘운송노조의 노조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결정을 내렸다"며 "이런 결정에도 노조가 단체 휴업에 나선 것은 불법행위"라고 강조했다.
단체 휴업이 장기화될 경우 레미콘·건설업계 모두 악영향이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표했다. 업계 관계자는 "업계와 노조 간 입장차가 커 휴업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장마철이 시작된 것도 휴업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이렇게 되면 모두가 안 좋은 상황에 처하게 되고 결국 건설현장 '셧다운'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레미콘 운송이 멈추면 골조 공사도 진행할 수 없어 건설현장 셧다운이 불가피해진다는 얘기다.
◆ "믹스트럭 증차 안 되면 단체 휴업 매년 반복될 것"
레미콘 운송 기사 단체 휴업은 매년 되풀이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유로는 '건설기계 수급조절 제도'가 지목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09년 건설기계 과잉공급을 방지하고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했다. 신규 등록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건설기계 임대시장 안정화를 꾀하는 것이 목적이다. 국토교통부는 2년마다 건설기계수급조절위원회를 열고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
레미콘 업계에 따르면 레미콘 믹서트럭의 경우 지난 2009년부터 올해까지 15년 간 증차가 되지 않았다. 이 제도가 레미콘 업계의 발목을 잡은 요인이라는 것이 레미콘 업계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운송 기사들이 매년 단체 휴업에 나설 수 있는 배경에 이 제도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신규 공급이 고정돼 운송 기사의 협상력이 더 높아져서다"며 "믹스트럭 증차가 되지 않으면 단체 휴업 문제는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22년의 경우 수도권 노조는 업계와 운송 단가 관련 합의가 불발되자 휴업에 나섰다. 당시 양측은 2년 간 운송 단가를 24.5% 올리기로 합의하며 휴업이 이틀 만에 종료됐다. 노조와 업계는 해마다 운송 단가 협상을 벌여왔고, 그때마다 운송 단가는 올랐다. 실제 수도권 레미콘 믹서트럭 1회 운송 단가는 5만1500원(2020년)→5만6000원(2021년)→6만3700원(2022년)→6만9700원(2023년)으로 매년 증가했다.
이번 휴업에 대해 건설업계는 예의주시하고 있다. 레미콘 수급이 끊기면 골조 공사가 중단되는 등 작업에 차질이 생겨 입주 지연까지 빚어질 수 있어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원자재비, 인건비 상승 등 경기 불황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휴업이 장기화되면 레미콘 수급이 원활하게 되지 않아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편, 건설업계에 따르면 전날 기준 수도권에서 시공 중인 건설현장 221곳 가운데 135곳(61.9%)에서 레미콘 타설이 중단된 것으로 파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