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한림 기자] 국내 증권사 수장들이 한자리에 다시 모였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금감원장)이 지난 1월 열린 '금융당국·증권업계 간담회'에서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 등 위기 상황에 노출되는 일이 없도록 직접 나서달라고 당부한 후 6개월 만에 다시 소집해서다.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금융감독원장-증권사회 CEO 간담회'가 열렸다. 이복현 금감원장과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을 비롯해 미래에셋·NH투자·한국투자·삼성·KB·신한·메리츠·하나·키움·대신·교보·한화투자·카카오페이·토스증권 CEO가, 외국계에선 JP모건·UBS의 수장들이 참석했다.
이날 자리에서는 올 초 간담회에서 핵심 사안으로 지목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 관리를 비롯해 올해 주목도가 높아진 기업의 밸류업 지원, 공매도와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등 상법 개정, 글로벌 증시를 주도하는 미국 엔비디아 등이 언급됐다.
이 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증권사 수장들에 다시 당부의 목소리를 건넸다. 먼저 부동산 PF 등에만 쏠린 자금 투자를 지양하고, '한국판 엔비디아'가 나올 수 있도록 혁신 기업을 발굴·투자해 기업의 밸류업을 이끌고 자본시장을 기회의 장으로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이 원장은 "시장은 엔비디아를 예로 들며 우리나라에는 왜 혁신기업이 나오지 않냐고 질문한다. 한국판 엔비디아 발굴을 위해서는 그간 부동산 PF 등 손쉬운 수익원을 찾았던 증권업계 영업 관행 바꿔야 한다. 따라 하기식 투자 결정으로 투자자 피해를 유발한 부동산 PF 등 쏠림 현상에서 탈피해 미래를 책임질 유망한 혁신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핵심 공급자의 역할을 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본시장이 기회의 장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매력적인 투자 환경을 조성해달라. 창조와 혁신의 노력을 통해 상품의 질을 높이고, 개인 투자자 신뢰 제고를 위한 공매도 전산시스템 등 제도 개선안이 원활하게 안착할 수 있도록 CEO 여러분께 책임 있는 역할 부탁한다. 정부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부동산 PF에 의존된 그간 증권사의 수입원을 '업계 관행'이라고 꼬집은 이 원장은 증권사의 건강한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부분에서도 또다시 업계 관행이라는 키워드를 언급하면서 질타의 목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안타깝게도 불법행위로 징계를 받은 임직원이 다른 회사로 이직해 동일 업종에 종사하는 등 안일한 업계 관행으로 사적 이익 추구와 같은 고객 신뢰를 훼손한 사고들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CEO들이 최고 책임자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잘못된 조직문화를 바로잡아주길 바란다"며 "부동산 PF 등 질서 있는 연착륙을 위해 부실 우려 사업장으로 평가된 경우 충분한 충당금을 설정하고, 선제적이고 면밀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외 증권사 수장들은 이 원장의 연이은 당부의 말을 경청하면서도 진지한 표정을 하고 간담회에 임했다. 이 원장과 서유석 협회장의 모두 발언 이후 열린 본 간담회는 비공개로 진행됐으나, 증권사 수장들은 각 사가 고민하는 부분은 물론 시장의 목소리를 내고 이 원장도 이에 대한 이야기를 경청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등 허심탄회한 대화의 장이 열렸다는 후문이다.
끝으로 이 원장은 '줄탁동시'를 언급하면서 각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목표한 자본시장 선진화를 이루려면 증권사들이 각자 자리에서 역할을 해주고, 시장은 각자의 노력으로 당국과 업계·투자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장이 돼야 한다는 해석이다.
이 원장은 "자본시장 선진화는 증권사가 정부와 함께 각자의 자리에서 줄탁동시의 정신으로 노력해야 이뤄질 수 있다. 이러한 소명 의식에 금융 당국과 업계가 공감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길 기대하며 주요 현안에 대한 시장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건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