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서다빈 기자] 고려제약의 불법 리베이트를 수사 중인 경찰이 다른 제약사로 수사 범위를 확대한다고 밝히면서 업계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다양한 리베이트 방식이 드러나면서 제약업계와 의료계의 자정 노력은 말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제약업계는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자정 노력을 펼치고 있으며 당국도 강도 높은 처벌을 하고 있지만, 사라지지 않는 모습이다. 제약사들의 사업 구조가 다양해지고, 복제약 의존도가 줄어드는 등 구조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불법 리베이트를 뿌리 뽑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2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 2010년 리베이트 쌍벌제를 도입한 이후에도 불법 리베이트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리베이트 쌍벌제란 리베이트를 제공한 자와 받는 자 모두가 처벌받는 법이다.
보건복지부는 리베이트를 두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제약·의료기기 기업이 자사 의약품을 신규 처방한 병·의원에 의약품 채택료 명목으로 현금을 제공하거나, 처방을 약속한 병·의원에 선지원금을 제공하는 등 금전·물품·향응 등을 제공한 유형. 또는 의사와 제약회사 영업사원의 지배적 관계에 의해 제약회사 직원이 의료인에게 편익·노무를 제공한 유형이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따르면 의료계 리베이트는 현금 전달, 골프 접대 등 전형적인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초 공정위로부터 불법 리베이트가 적발된 경보제약은 2015년 8월부터 2020년 7월까지 자사 의약품을 처방하는 대가로 병·의원에 150차례에 걸쳐 2억8000만원 상당의 현금을 지급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해 공정위로부터 불법 리베이트 사실이 적발된 JW중외제약은 금품 및 향응 제공, 골프 접대, 해외 학술대회 참가자 지원, 임상 관찰 연구비 지원 등의 수단을 활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안국약품은 자사 직원 복지몰을 통해 영업사원들이 물품을 구매해 병·의원에 배송하는 방식과 무선 청소기, 노트북 등의 전자기기와 숙박비를 병·의원에 지원하는 방법으로 경제적 이익을 제공했다.
최근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고려제약은 의사 1000여명에게 현금과 가전제품, 골프 접대 등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제약사로부터 편의를 제공받은 사례도 나왔다. 과거 대학병원에서 근무했던 A 씨는 "타 지역에 출장길에 제약사 영업 직원이 운전하는 차로 출장 장소까지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 제약사 영업 직원 B 씨는 "직접 접대하는 방법도 있지만 병원 인근 식당이나 카페에 미리 선결제를 하고 의료진들이 이용할 수 있게 매달 일정 금액을 가게에 달아놨던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또 의사 대신 제약사 직원이 학회나 예비군 훈련에 대신 참석한 사례도 적발됐다.
일각에서는 제네릭의약품(복제약)에 의존하는 제약사들은 리베이트를 통한 영업 활동이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제네릭의약품은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의 △주성분 △함량 △제형 △효능 △효과 등을 복제해 만들어낸 의약품이다. 제네릭의약품의 경우 동일한 성분을 가진 제품이 시장에 널린 상황이기 때문에, 회사의 영업 활동과 인지도가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네릭의약품은 경우 제품의 성능은 동일하기 때문에 회사의 영업 직원들의 활동이 판매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제네릭의약품이 다수인 규모가 작은 제약사들은 리베이트가 적발될 경우 감수해야 할 위험과 처벌보다 벌어들이는 수익이 더 크기 때문에 당장 눈에 보이는 매출과 성과를 위해서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한편, 정부가 오는 10월부터 제약사들의 영업대행업(CSO) 신고제 및 교육 의무화를 시행하면서, 제약업계의 불법 리베이트 단속에 대한 불안감은 연말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CSO는 제약사 자체 영업조직이 아닌 의약품 영업을 전문으로 하는 외주업체가 영업을 위탁받아 대행한다. 말 그대로 외부 대행업체이기 때문에 불법 리베이트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일명 '꼬리 자르기' 방식으로 제약사가 아닌 외부 업체에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 규제 강화를 예고하면서 CSO에서 리베이트 문제가 발생할 경우 제약사도 함께 처벌을 받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