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서다빈 기자] 의대 증원을 두고 의사와 정부 간의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국내 제약사들의 실적 하락이 전망되고 있다. 올해 1분기에는 의정 갈등의 여파가 크지 않았지만 2분기 실적에 본격적으로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25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의정 갈등이 길어지면서 입원 환자와 수술 환자가 감소해 처방 실적이 줄었다. 이에 따라 오는 2분기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다.
대형병원의 경우 입원과 수술을 축소하는 비상 경영체제가 장기화되면서 자연스레 마취제·수액제·항암제 등 원내의약품 처방이 감소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1분기 때와 상황이 다르다"며 "지난 1분기에는 의정 갈등이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제약사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았다. 환자들도 한번에 2~3개월 분량의 약을 타갔기 때문에 우려가 없었지만 상황이 길어지면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어 "병원에서 환자를 받지 않아 수술과 입원 환자가 감소했고 병원들도 집단 휴진에 들어갔다"며 "수액이나 마취제, 항암제 등을 주력으로 내세우고 있는 회사들의 2분기 매출 악화가 예상된다"고 전했다.
정유경 신영증권 연구원은 "의료 파업이 3월부터 본격화됐기 때문에 1분기 실적에는 제한적으로 반영됐을 수 있지만 2분기 실적에는 영향을 받은 제약사들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 고려제약이 의사들에게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으면서 제약업계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향후 경찰 수사가 제약업계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고려제약은 의사 1000여명에게 의약품 처방을 대가로 금품을 제공한 사실이 적발돼 경찰로부터 수사를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제약사 불법 리베이트 의혹을) 한 회사의 문제로만 보기에는 적절치 않다. 구조적 문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언급하면서 다른 제약사들로 불똥이 튈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는 올해 초 불법 리베이트 단속을 강화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제약사 영업 직원들의 활동도 축소됐다. 정부는 지난 3월 21일부터 5월 20일까지 약 두달간 불법 리베이트 집중 신고 기간을 운영했다. 집중 신고 기간이 끝났음에도 다수의 병원에서는 아직도 제약사, 의료기기 회사의 영업직원들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병원에서 영업 직원들의 병원 방문을 금지해서 직원들이 영업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현장 영업이 어렵기 때문에 영업직원들을 모아 본사에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정 갈등으로 국내 제약사들은 임상 시험 진행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보건복지부 한국임상시험참여포털에 따르면 지난 2월 전공의 집단사직 이후 6월 20일까지 4개월간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허가를 받은 임상시험은 총 328건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428건과 비교해 30.4% 줄어든 수치다.
대학병원의 교수들도 파업에 참여하면서 임상시험승인계획서(IND) 작성과 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 심사 등 임상 과정에 제동이 걸렸다. IRB 심사는 연구에 참여하는 대상자의 권리·안전·복지를 보호하며 연구 대상자의 임상 연구 참여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임상시험의 진행 여부를 승인하는 역할을 한다.
신약 개발 업무를 진행하고 있는 업계 종사자 A 씨는 "지난 1분기에도 전공의들의 파업으로 업무가 교수들에게 가중되면서 신약 임상시험 진행이 어려웠는데, 지금은 교수들도 파업에 동참하면서 IND 작성이 늦어지는 건 물론 IRB 개최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