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론 안 된다" 삼성·SK 등 주요 대기업, 잇달아 '전열 재정비'


"분위기 쇄신" 반도체 수장 교체한 삼성전자
SK그룹, 최창원 의장 주도로 리밸런싱 박차

삼성전자는 지난 21일 대내외 분위기를 일신해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며 반도체 수장을 전영현 부회장으로 교체했다. /더팩트 DB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잇달아 전열 재정비에 나서고 있다. 불확실한 글로벌 경영 환경이 이어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전날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의 수장을 전격 교체하는 '원포인트' 인사를 단행했다. 전영현 부회장을 DS부문장에, 전 부회장이 이끌던 미래사업기획단장에 기존 DS부문장이었던 경계현 사장을 임명하는 내용이다. 전 부회장은 지난 2000년 입사한 후 2017년 삼성SDI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반도체 사업 전반에 걸쳐 오랜 기간 경력을 쌓은 인물로,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의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삼성의 사장단 인사가 이뤄지는 연말이 아닌 5월에 주요 사업 수장을 교체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승부수를 띄운 셈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인사와 관련해 '조직 재정비',' 분위기 쇄신' 등에 무게를 뒀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5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내는 등 혹독한 시간을 보낸 뒤 찾아온 반도체 업황 회복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기민하게 전열을 가다듬겠다는 의미다. 재계에서는 전 부회장이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미래 반도체 사업을 중심으로 새판을 짜고, 이 과정에서 과감한 조직 개편에도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불확실한 글로벌 경영 환경하에서 대내외 분위기를 일신해 반도체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며 "전 부회장이 기술 혁신과 조직 분위기 쇄신을 통해 임직원의 각오를 새롭게 하고 반도체 기술 초격차와 미래 경쟁력을 강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SK그룹도 전열 재정비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해 말 그룹에 합류한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주도로 주요 사업을 점검 및 최적화하는 '리밸런싱(재조정)' 작업을 추진 중이다. 중복 사업을 조정하고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업 비용 지출을 효율화하고, 직원들의 근무 형태를 변경하는 등의 체질 개선도 이뤄지고 있다. 앞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느슨해진 거문고는 줄을 풀어내어 다시 팽팽하게 고쳐 매야 바른 음을 낼 수 있다"며 경영 시스템 점검을 당부했다.

SK그룹은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주도로 그룹 리밸런싱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SK그룹 주요 경영진은 지난달 말 한자리에 모여 사업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방향성, 추진 계획과 관련해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최창원 의장은 "환경 변화를 미리 읽고 계획을 정비하는 것은 일상적 경영 활동으로 당연한 일인데, 미리 잘 대비한 사업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영역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CEO들이 먼저 겸손하고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미래 성장에 필요한 과제들을 잘 수행해 나가야 한다"며 "더 큰 도약을 위해 자신감을 갖고 기민하게 전열을 재정비하자"고 강조했다.

SK그룹은 리밸런싱 작업에 대해 "'밸류업'에 박차를 가하기 위한 행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계는 큰 틀에서 기업 가치 제고 차원이더라도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위기감이 크게 반영된 움직임으로 보고 있다. 마찬가지로 반도체 사업이 지난해 7조원 이상의 적자를 내는 등 한파를 겪었다. 반도체와 함께 최태원 회장이 핵심 성장 동력으로 삼은 배터리 사업도 3년 동안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올해 1분기 28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바이오 사업의 사정도 긍정적이지 않다. SK그룹은 앞으로 전기차 배터리와 그린 사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SK그룹은 다음 달 중순쯤 확대경영회의를 열고 리밸런싱 작업 추진 현황과 하반기 사업 전략 등을 점검할 예정이다. 분위기 쇄신을 위해 10년 동안 유지한 확대경영회의의 명칭을 변경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다른 기업들도 조직 점검에 집중하고 있다. 한화그룹의 경우 현상황을 "고금리·고물가·저성장의 삼중고 속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고 진단한 김승연 회장이 5년 4개월 만에 현장 경영을 재개했다. 지난 3월부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캠퍼스, 한화로보틱스 판교본사, 한화생명 여의도본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사업장 등을 잇달아 찾아 사업 전략을 점검하고 임직원을 대상으로 도전과 혁신을 독려하는 등 분위기 다잡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 밖에 구광모 회장이 점 찍은 미래 먹거리 AI·바이오·클린테크를 육성하는 방향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있는 LG그룹은 최근 전략보고회를 열고 사업 경쟁력 강화 전략을 점검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경영 환경이 급변하는 현시점에 사업 계획을 정비하는 일은 일상화돼 있다. 그것이 '대처'라는 것"이라며 "각 회사가 놓인 상황에 따라 대처 수위만 다를 뿐"이라고 밝혔다.

rock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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