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황원영 기자] 김범석 쿠팡 의장과 송치형 두나무 의장이 총수 동일인 지정을 피해 갔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외국인도 대기업집단 총수로 지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봤으나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이 적용되면서 또다시 법인을 내세울 수 있었다. 일각에서는 규제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4년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결과'에 따르면 쿠팡과 두나무는 자연인이 아닌 법인 쿠팡㈜과 두나무㈜를 동일인으로 지정했다.
이번 대기업집단 지정에는 지난 10일부터 시행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처음 적용됐다. 개정 시행령은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을 동일인으로 보는 일반 원칙은 유지하되, 예외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는 예외 요건은 △동일인을 자연인으로 보든 법인으로 보든 국내 계열회사의 범위가 동일한 기업집단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자연인이 최상단회사를 제외한 국내 계열회사에 출자하지 않고, 해당 자연인의 친족도 계열회사에 출자하지 않는 집단 △해당 자연인의 친족이 임원 재직 등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채무 보증이나 자금 대차가 없는 등 사익편취 우려가 없는 경우 등이다.
제도 개선 논의의 시발점이 됐던 미국 국적의 김범석 쿠팡 의장은 4년 연속 총수 동일인 지정을 피했다. 쿠팡은 2021년 처음으로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된 후 김 의장이 아닌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해 왔다.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는 제도적 미비가 이유였다.
이에 공정위는 이달 내외국인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대기업집단 동일인 판단 기준을 담은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했으나 이번에도 김 의장은 대기업 총수 타이틀을 피하게 됐다.
쿠팡과 두나무 법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된 건 4가지 예외 조건을 모두 충족했기 때문이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이 쿠팡처럼 외국인이든, 두나무처럼 내국인이든 정해진 요건만 충족하면 법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선 김범석 쿠팡 의장의 동생 김유석씨 부부가 쿠팡 주식회사에서 파견 근무 중인 점을 들어 '친족이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예외 조건을 충족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일었다.
이에 한 위원장은 "김범석 의장 동생 내외가 쿠팡Inc 소속으로 국내 쿠팡 주식회사에 파견근무하고 있는 사실은 확인이 된다"면서도 "이사회 참여나 투자 활동, 임원 선임 등 경영 참여 사실은 없는 것으로 소명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쿠팡 주식회사와 김범석 의장은 시행령상 예외 요건을 인지하고 있고, 친족의 국내 계열회사 임원 미재직과 경영 미참여 사실 그리고 위반 시 동일인 변경 및 제재 가능성에 대해서 명확히 확인하고 서명했다"며 "추후라도 예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바로 동일인 변경 지정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자연인이 아닌 법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되더라도 상호·출자 금지, 계열사에 대한 채무보증 금지,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등 대부분의 대기업 집단 시책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다만, 동일인과 그 친족을 의미하는 '특수관계인'을 지정할 수 없게 되면서 일감 몰아주기 같은 총수 일가 사익편취 행위에 대한 처분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허점이 지적된다.
이에 공정위는 동일인이 법인으로 지정된 쿠팡·두나무에 대해 모니터링을 지속할 방침이다. 공정위는 "예외 요건의 충족 여부, 계열사 간 부당한 내부 거래 등에 대해 모니터링하고, 법 위반 시 엄정하게 법 집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