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에코프로그룹의 전구체 생산 자회사 에코프로머티리얼즈(에코프로머티)의 보호예수(의무 보유) 기간이 만료를 앞두고 있다. 이에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맏사위인 윤관 블루런벤처스(BRV) 대표가 곧바로 엑시트(자금회수)에 나설지 귀추가 주목된다. BRV 산하의 벤처캐피탈인 BRV캐피탈은 에코프로머티의 2대주주로, 윤관 대표의 결정으로 인해 대규모 물량이 쏟아질 경우 시장이 감당해야 할 충격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3일 재계와 투자 업계에 따르면 에코프로머티의 보호예수는 오는 17일 해제될 예정이다. 대량의 매도 가능 물량이 풀리는 것으로, BRV가 보유한 에코프로머티 지분 총 24.7%(1685만5263주)도 마찬가지다. 앞서 BRV캐피탈은 2개 펀드(BRV Lotus Growth Fund 2015, L.P., BRV Lotus Fund III, L.P.)를 통해 지난 2017년부터 에코프로머티 지분 926억원어치를 사들였고, 현재 지분 가치는 약 1조7000억원에 달한다.
에코프로머티는 BRV 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윤관 대표의 대표적인 국내 투자 성공 사례로 꼽힌다. 윤관 대표 입장에서는 펀드 운용 보수로 거액을 손에 쥘 수 있는 시점이 다가온 셈이다. 고 구본무 회장의 장녀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와 지난 2006년 결혼한 윤관 대표는 LG 오너 일가가 됐음에도 LG그룹에 속하지 않고 줄곧 BRV에서 일하고 있다. 그가 국내 기업 투자를 본격화한 것은 2010년부터다.
관심사는 에코프로머티 지분 처분 시점이다. 재계에서는 윤관 대표가 당장 엑시트에 나서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납세 의무를 지지 않으려 과세당국을 상대로 세금 불복 소송을 벌이고 있는 등 불확실성이 고조된 상황을 고려해 한동안 신중을 기할 것이란 예상이다.
서울지방국세청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윤관 대표가 국내에서 벌어들인 배당 소득 221억원에 대한 종합소득세 신고를 누락했다고 판단했고, 이에 강남세무서는 윤관 대표에게 123억원을 청구했다. 그러나 윤관 대표는 자신이 한국인이 아니고, 연간 국내 체류 일수가 183일이 되지 않아 '국내 거주자'도 아니라고 주장하며 조세심판원에 불복 심판 청구를 제기했다. 이를 통해서도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윤관 대표는 지난해 3월 서울행정법원에 강남세무서장을 상대로 '종합소득세 부과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냈다. 재판은 오는 30일 4번째 변론기일을 앞두고 있다.
윤관 대표가 국내 거주자로 인정된다면, 모든 소득에 관해 세금을 내야 한다. 법원 판단에 따라 에코프로머티뿐만 아니라 2020년 이후 벌어들인 소득, 향후 국내 투자 건에 대해서도 세금이 부과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한 조세전문 변호사는 "소득세는 기준연도를 기점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이번 소송의 결과가 향후 소득세를 판단할 때 참고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세금 불복'을 비롯해 최근 윤관 대표와 관련해 일고 있는 여러 잡음을 의식한다면 보호예수 종료 직후 물량을 쏟아내는 등 세간의 관심을 모으는 움직임을 나타내진 않을 것이란 해석도 있다. 윤관 대표는 삼부토건 오너 3세인 조창연 씨로부터 2억원대의 대여금 청구 소송을 당한 상태로, 조정 절차를 통해 윤관 대표 측이 합의 의사를 밝혔으나 결국 불발된 것으로 확인된다. 일각에서는 2억원을 갚지 못해 소송을 당한 것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과 함께, 윤관 대표를 둘러싼 더 복잡한 금전 거래가 있을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현재 구연경 대표도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윤관 대표가 지난해 4월 500억원의 투자를 발표한 바이오 업체 A사 주식을 개인적으로 취득했기 때문이다. 투자 발표 당일 A사 주가는 16% 넘게 급등했는데, 구연경 대표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미리 주식을 매수했다면 자본시장법 위반이 될 수 있다. 해당 의혹이 제기되자 구연경 대표는 A사 주식 3만주를 LG복지재단에 모두 기부했다. A사 주식 매수 시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입을 열지 않고 있다.
구연경 대표는 어머니 김영식 여사, 동생 구연수 씨와 함께 구본무 회장의 상속 재산을 다시 분할해야 한다는 내용의 소송전도 벌이고 있다. 상속이 이미 완료된 상황에서 어떠한 이유로 뒤늦게 문제를 제기한 것인지, 장자 승계 원칙이 확고한 LG그룹 내에서 어떻게 세 모녀가 상속 지분에 대해 반기를 들 수 있었는지 등 소송 배경을 놓고 의구심 섞인 시선이 이어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에코프로머티는 시장의 높은 관심을 받는 회사다. 이 회사 2대주주가 대규모 엑시트를 결정한다면 '윤관'이라는 이름이 또 한 번 주목받을 것"이라며 "각종 소송 및 논란에 직면한 상황에서 세간의 관심을 끄는 것은 윤관 대표 입장에서 부담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라고 밝혔다.
단순히 투자금 회수 측면에서 조금 더 지켜본 후 선택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에코프로의 주요 자회사들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등의 영향으로 실적 부진을 겪고 있고, 주가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에코프로머티는 최근 2개월 동안 주가가 반토막 나면서 10만원대를 겨우 유지하고 있다.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업황이 개선되며 주가 역시 고점 수준까지 회복되길 기다려야 한다.
물론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투자 종료를 결정할 수도 있다. 실제로 투자 업계는 BRV가 곧바로 자금 회수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7년 동안 보유한 데다, 장기적인 매력도에 대한 확신 역시 갖기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BRV는 SSG닷컴 투자 실패 등으로 인해 자금이 묶여 다른 투자처를 찾아 나서기 위해선 자금 확보가 필요한 것으로 파악된다. BRV는 SSG닷컴에 총 1조원(지분 15%)을 투자했으나 실적 부진, 기업공개(IPO) 연기 등이 지속되자 이를 근거로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고, 현재 풋옵션(주식 매도 청구권) 행사를 놓고 신세계 측과 대립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윤관 대표가 엑시트에 시동을 건다면 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상당할 전망이다.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방식이더라도 마찬가지다. 앞서 카카오페이는 2대주주인 알리페이싱가포르(지분 약 34.2% 보유)가 블록딜을 결정하자 주가 급락을 겪은 바 있다. 증권 업계 관계자는 "지분 25%가량을 갖고 있는 2대주주가 엑시트에 나서면 주가 폭락은 당연한 수순이다. 엑시트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조차 주가에는 악재가 될 수 있다"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블록딜에 나설 가능성이 크지만, 이 경우에도 이튿날 주가 급락이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BRV 측은 엑시트 여부에 대한 <더팩트> 취재진의 질문에 어떠한 답변도 내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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