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손해보험업계 1위 삼성화재가 올해부터 은행을 통한 보험 판매 채널, 방카슈랑스를 중단한다고 밝힌 가운데 타 손해보험사들의 추가 이탈 가능성에 시선이 쏠린다. 새로운 회계제도(IFRS17) 도입으로 저축성보험 판매 유인이 떨어진 데다 손보사 보험 가입 경로 중 방카슈랑스 차지 비중이 극히 적은 영향이다. 몇 남지 않은 손해보험사들 역시 한때 출혈경쟁까지 벌였던 방카슈랑스 시장을 떠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는 올 1월부터 방카슈랑스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 이는 영업을 시작한 지 21년 만에 내린 결정이다. 삼성화재는 기존 상품에 대한 관리만 하기로 결정하고 은행에 이를 통보했다.
업계 1위 삼성화재가 방카슈랑스에서 철수하면서 남은 손보사는 현대해상,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 NH농협손해보험 정도다. 메리츠화재, 흥국화재 등은 이미 시장에서 손을 뗐다.
방카슈랑스는 은행(Banque)과 보험(Assurance)의 합성어로 보험사가 은행과 제휴해 보험상품을 위탁 판매하는 제도를 말한다. 방카슈랑스는 은행에서 판매되는 만큼 저축성 보험이 전체 판매의 70~8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지난해 IFRS17 도입되면서 저축성보험 등은 보험사에 부채로 잡혀 실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상품이 됐다.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라는 것이다. 현재 손보사 방카슈랑스는 전체 보험 모집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대에 불과하다.
실제로 손해보험협회 공시자료에 따르면 생보사의 보험 가입 경로 중 방카슈랑스 비중(계약 건수 기준)은 2012년 10.8%에서 2022년 18.7%로 늘어난 반면 같은 기간 손보사 비중은 2.3%에서 2.1%로 줄었다.
금융권에서는 손보사들의 방카슈랑스 채널 축소가 예견된 수순이라는 의견도 있다. 디지털 금융 확대로 점포 축소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방카슈랑스 채널을 늘릴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20개 전체 은행권의 점포 수는 5755개로 1년 전 보다 52개 줄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권의 점포 수 축소가 이어지고 있고 은행에서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저축성보험 판매의 주요 창구인 방카 채널이 더 이상 수익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하에 업계 1위 삼성화재의 방카 철수로 남은 손보사들도 방카 채널을 유지할 유인이 줄어들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보사들의 방카슈랑스 철수로 은행의 고심도 깊어질 전망이다. 방카슈랑스는 은행의 대표적인 비이자 이익 상품이다. 최근 홍콩 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의 손실로 투자상품 판매가 쪼그라들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대안으로 떠올랐으나 이마저도 제동이 걸린 셈이다.
특히 현재 한 개 은행에서 특정 보험사의 상품을 25% 이상 팔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삼성화재의 철수로 해당 비율을 맞추기 어려워졌다. 이에 은행권에서는 이른바 25%룰이 완화돼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은행연합회는 지난해 '방카슈랑스 20주년 세미나'를 열고 규제 손질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업계에선 몇 남지 않은 손보사들도 한때 출혈경쟁까지 벌였던 방카슈랑스 시장을 떠날 것으로 점치고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방카슈랑스 시장은 손보사 쪽에서는 매력이 많이 떨어진 채널이라 특히 회계제도 변경 이슈와 맞물려 저축성의 상품들은 더 매력을 잃었다"며 "특수한 상황에 있는 몇몇 손보사를 제외하고는 이번 삼성화재의 행보를 보고 고민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방카슈랑스 채널은 2003년 최초 도입 이후 지난 20여 년 동안 보험 판매 채널로서 금융소비자 편익 및 금융산업 발전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추세대로 방카슈랑스 채널의 제도개선 없이는 판매채널 철수 등이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며 "방카채널의 축소는 소비자의 편의성 하락과 고객 선택권 제한으로 연결된다"고 분석했다.
업계에선 우선적으로 손보업권 판매채널 유지를 위한 비중 완화가 필요하며 방카슈랑스 채널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해 규정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는 "금융소비자의 상품 선택권을 제한하는 제약사항인 판매 상품 제한과 판매 상품 비중 제한 관련 개정이 시급하다"면서 "방카슈랑스 채널에서 소비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실손보험, 종신보험, 자동차보험을 판매할 수 없다. 보험업법 개정을 통해 금융 소비자들이 다양한 채널에서 상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