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영풍과 75년 동업 결별 '본격화'…최씨 vs 장씨 '집안싸움' 심화


서린상사 내 영풍과 협업 중단 추진…"고려아연 이득 없다"
영풍, 신주발행무효 소송 제기…지분 확보 경쟁 지속 전망

75년간 이어진 영풍그룹과 고려아연의 한 지붕 두 가족 경영이 결별 수순을 밟고 있다. 재계에서는 두 집안의 싸움이 장기화되면 양측 모두 손해가 될 것이라며 두 집안 간의 합의를 통한 주식 교환 등 출구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 사 제공

[더팩트 | 김태환 기자] 고려아연이 종속회사인 서린상사 내에서 영풍과의 협업을 중단하는 절차를 밟으면서 75년간 이어온 두 회사의 동업 관계가 결별 수순을 밟고 있다. 영풍 역시 고려아연을 상대로 현대자동차와 해외합작법인의 신주발행 무효 소송을 제기하는 등 양측의 경영권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서린상사의 주주총회를 열고 이사회를 재구성하는 등의 경영권을 가져오는 방향을 추진하고 있다.

서린상사는 비철금속을 유통하는 회사로 영풍과 고려아연이 공동으로 운영해 온 '동업의 상징'이었다. 고려아연이 66.7%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 주주이지만, 경영권은 영풍(지분율 33.3%)이 갖고 있다.

고려아연은 영풍 측이 원료 구매와 판매 등 사업 계획을 확정 짓지 못하는 등 불확실성이 높아 협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고려아연은 이미 영풍과 회사의 공동 경영을 마무리 짓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이미 6개월 전부터 영풍과 인적분할을 통해 회사를 나누고 협업을 중단하기로 분명 합의를 하고 논의를 해왔다"면서 "영풍은 고려아연의 주주총회 안건 등을 문제 삼아 해당 안건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고려아연이 사실상 영풍과의 동업 관계를 결별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영풍의 현금 창출원을 축소해 향후 경영권 분쟁에 대비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앞서 영풍은 지난해 9월 고려아연과 현대자동차의 해외 합작법인인 HMG 글로벌 간 이뤄진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대해 신주발행을 무효로 해달라며 서울중앙지법에 소장을 제출했다. 대상이 되는 주식은 액면금액 5000원 보통주 104만5430주다.

영풍은 고려아연의 신주발행이 사업계획 추진을 위한 투자금 확보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경영권 유지를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2022년 6월 기준 영풍 측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35.22%로 고려아연 경영진과 우호 주주 지분율(18.74%)의 두 배였는데, 신주 발행 후인 2023년 9월엔 장형진 영풍 고문 측은 31.57%,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32.10%로 고려아연 지분율이 역전됐다는 것이다.

지난 19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영풍빌딩 별관에서 제50기 고려아연 주주총회가 열렸다. 사진은 영풍빌딩 별관 내부의 고려아연 간판. /김태환 기자

고려아연은 지난 2022년 최윤범 회장이 취임한 이후 장씨 측과 지분 경쟁을 이어오고 있다. 최씨 측은 외부 우호 지분을 확보하고, 장씨 측은 계열사를 통해 고려아연 지분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지분을 늘려오고 있다.

재계에서는 최 회장이 공격적인 신사업 경영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 갈등이 시작됐다고 본다. 고려아연은 최근 신재생에너지, 이차전지소재, 자원순환을 비롯한 신사업 투자를 늘리고 있다. 오는 2033년까지 신재생에너지와 수소에 8조3000억원, 이차전지소재에 2조1000억원, 자원순환에 1조5000억원을 넣는 설비투자(CAPEX)를 추진한다.

특히 장 씨 측은 최 회장이 차입을 활용한 신사업 투자가 늘고 있다는 점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 영풍과 고려아연은 과거부터 부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보수적 자금 운용하는 '무차입 경영' 기업으로 알려진 곳이다. 실제 고려아연의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부채비율이 25%이며 차입금비율, 순차입금비율도 각각 9%, 2%에 그친다.

비철금속업계 관계자는 "고려아연 입장에서는 영풍이 사실상 동업자가 아니라 경쟁 관계인데, 구매부터 판매까지의 경영 노하우 전반을 영풍과 공유하게 되면 사실상 손해를 보게 되는 입장이라 서린상사의 분리를 서두르는 것"이라며 "고려아연의 경우 해외 시장에서 가진 브랜드 가치가 높은데, 영풍의 아연 생산 감산이나 사고 발생 등이 고려아연과 직접 엮이게 되는 점도 부담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재계 관계자는 "우호 지분을 모두 합친 최씨 측 지분은 약 33.3%이고, 대주주인 장씨 측은 약 32.2%로 여전히 지분 규모가 박빙인 상황"이라며 "향후에도 우호 지분 확대와 더불어 계열사 등을 동원한 지분 매입 싸움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장기간 경영권 분쟁은 고려아연과 영풍 양측에 손해가 될 것"이라며 "두 집안 간 합의를 통한 주식교환 등 출구 전략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kimthi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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