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여의도=우지수 기자] 중국발 이커머스 플랫폼의 내수 시장 '공습' 위협에 섣부른 규제 강화로 대응하지 말아야 한다는 전문가 지적이 나왔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해외 이커머스 규제 방안에 대한 의견이다. 정부가 시장 상황에 관심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국내 기업까지 어려워질 수 있는 규제 확대보다는 해외 업체가 현행법 체계에서 통제돼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21일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서울 여의도 KF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중국 이커머스 공습, 소비자 및 소상공인 보호 방안' 세미나를 개최했다.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은 환영사에서 "중국 이커머스 확장세는 과거 당나라, 거란족의 침입만큼 심각한 상황"이라며 "국내 유통 생태계를 구성하는 소비자와 소상공인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나아가 국내 제조 기업마저 무너질까 걱정된다"며 포문을 열었다.
세미나 토론에 참가한 전문가들은 중국 이커머스 대응 방안에 대해 공통된 의견을 내놨다. 이들은 중국 기업 위협이 빠른 속도로 커질 것이며 국내 기업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기존 국내에서 시행 중인 플랫폼 규제를 확대하지 않고 중국 플랫폼에 적용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3일 경제부총리 주재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해외 온라인 플랫폼 관련 소비자 보호 대책'을 발표했다. 발표 내용을 요약하면 이커머스 기업의 △해외 사업자의 국내 대리인 지정 의무화 △전자상거래법 위반 행위 감시 강화 △통관 과정 강화 △유해상품 차단 등 방안으로 이뤄져 있다.
알리익스프레스는 한국 법인을 설립했지만 소비자 불만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테무 경우 한국에 법인을 만들지 않고 대행 회사를 고용해 한국 시장에 진출한 상황이다.
장준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전 쿠팡 정보보호법무책임자)는 "중국 이커머스 기업이 정책이나 규정 등 문제를 일으켰을 경우 조사 과정이 험난하다"며 "규제 기관이 중국 본사와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한국 기업은 정책 위반에 대해 빠르게 조치해야 하지만 해외 사업자 경우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역차별'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지혜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강도가 높은 플랫폼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플랫폼 업체를 옥좨 소비자 불만을 해소해온 것은 국내 기업일 때 이야기"라며 "해외 사업체에게는 이 규제가 유명무실하다. 공정위 발표대로 중국 플랫폼이 국내 대리인을 지정하더라도 문제가 생겼을 때 판결은 한국에서 받고 집행은 중국으로 가서 처리해야 한다"며"고 꼬집었다.
신 교수는 이어 "모범 운영 사례를 낸 국내 플랫폼에 정부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국내 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공정성이 담보된 시장에서 경쟁해야 건강한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은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 플랫폼이 국내 기업은 경쟁도 할 수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다. 멀리 봤을 때 유통 업계에만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며 "제조업이나 일자리 등 내수 시장에 피해가 커지기 전에 시급한 정부 준비가 필요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회사 성장이 국내 산업계 중국 의존도를 높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으로 한국 상품을 수출하는 경우 중국 채널을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수입 직구 채널까지 경쟁력을 갖추면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판로가 모두 중국 위주로 형성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 유통 시장 파이는 정해져 있다. 시장 성장 속도는 늦춰졌고 앞으로도 큰 규모 성장은 어렵다. 시장 경쟁이 거세지는 가운데 중국 이커머스 업체가 뛰어들었다"며 "중국 기업 성장이 시장 혼란을 키우면 나가떨어지는 기업이 더 빨리 나올 수 있다. 11번가, 위메프, 티몬 등 1위 업체들을 추격하고 있는 회사가 위기감을 더 크게 느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중국 정부는 자국 이커머스 기업을 지원하면서 우호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에서는 국가 안보의 문제로 여기는 시선도 생겼다"며 "한국 기업은 규제 속에서 힘든 경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토종 플랫폼 경쟁력을 키울 수 있게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 플랫폼 사업도 디지털 산업의 중심 축이다.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국가 안보와 직결된 산업으로 여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현수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이 새로 국내 시장에 진입하면서 '기울어진 운동장' 현상이 보이고 있다. 새롭게 참여한 사업자들에게도 현재 법 제도와 규제가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가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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