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최의종 기자] 해양수산부가 현재 HMM 재매각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하림그룹과 협상 무산을 반면교사로 삼아 정교한 매각 로드맵을 다시 설계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매각이 지연되는 가운데 HMM이 당면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민생토론회 브리핑에서 "HMM은 국가의 재정이 투입된 회사기 때문에 건전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세워간다는 정도만 말씀드리겠다"며 재매각 계획이 현재 없다고 밝혔다.
KDB산업은행(산은)·해수부 산하 공공기관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가 하림그룹·JKL컨소시엄과 진행한 HMM 매각 협상이 지난달 6일 최종 결렬됐다. HMM은 앞으로도 당분간 산은 등 채권단 관리체제를 이어갈 예정이다.
업계에서 HMM 재매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강 장관 발언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HMM 재매각이 쉽지 않은 배경은 하림과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경영권 문제'와 산은과 해진공이 보유한 '영구채'가 꼽힌다.
해진공은 '국내 유일 원양 선사'라는 위상을 고려해 HMM을 쉽게 놓아주기 어려운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하림과 협상 당시 해진공이 경영권에 영향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인 배경에 해운업 특수성이 있다고 평가한다.
입찰 당시 산은·해진공은 1주당 5000원짜리 HMM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2조6800억원 영구채를 갖고 있었다. 1조원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한 산은·해진공 합산 지분율은 현재 57.9%다. 1조6800억원 영구채는 내년 4월까지 주식으로 전환돼 지분율은 71.7%가 된다.
해수부가 현재 계획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재매각은 시계제로 상황에 놓였다. 산은에는 이같은 상황이 부담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HMM 주가가 1000원 떨어지면 산은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0.07%포인트 떨어진다. 금융당국은 BIS 비율을 13% 이상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데, 산은의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BIS는 13.66%다.
강석훈 산은 회장은 지난해 "HMM 주가가 1000원 움직이면 산은 BIS 비율은 7bp(1bp=0.01%) 움직이고, 1조8000억원 가량 자금 공급 여력에 영향을 준다"며 "산은 재무구조 안정화를 위해서는 HMM 매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HMM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대기업이 움직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자금 동원력을 뒷받침하는 동시에 계열사 간 시너지를 통해 HMM이 성장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업계에서 언급되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이나 한화그룹 등은 시큰둥한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포스코와 KT&G와 같은 '소유분산기업' 카드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소유분산기업은 뚜렷한 지배 주주가 없는 기업이다. 포스코는 지난 1998년 민영화 당시 특정 기업이 아닌 광범위한 투자자에 주식을 매각하는 방법으로 진행됐다. 최대 주주는 6.71% 국민연금공단이다.
산은과 해진공의 HMM 지분 재매각 절차 개시를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HMM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현재 가장 큰 리스크는 해운동맹이다. 세계 2위 선사 덴마크 머스크와 5위 독일 하팍로이드가 내년 각각 2M와 디 얼라이언스를 탈퇴해 새 해운동맹을 만들기로 했다. 이에 따라 디 얼라이언스 정회원인 HMM도 해운동맹 활동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운 업황은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다. 홍해 사태 여파로 올랐던 운임은 꺾이는 추세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해 11월 24일 993.21에서 지난 1월 19일 2239.61을 찍었다가, 지난 1일 기준 1979.12를 기록해 2000선이 무너졌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 회장은 "홍해 사태가 진정되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기(終期)로 가는 분위기 속 운임이 올라가기 어렵다"며 "한번 꺾인 SCFI가 이제 오르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해운동맹 문제 해결 등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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