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1주당 100만 원을 호가하며 황제주 반열에 오른 종목들이 있다. 국내 증시 역사상 황제주 자리에 올랐던 종목은 코스피 11개, 코스닥 5개 등 도합 16개 종목이다. 높은 가격만큼 투자자와 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지만 현재 국내시장에서 황제주는 자취를 감췄다. 경영진을 둘러싼 논란, 실적 또는 업황 악화, 물적분할 등 왕좌를 내려놓은 이유는 다양하다. 최근에는 고금리·고유가·고환율 '3고' 우려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같은 중동발 리스크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증시가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한때 황제주로 위상을 뽐냈으나 여러 가지 복합적 이유로 현재는 몸집을 줄인 격동의 종목들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편집자주>
[더팩트|윤정원 기자] 영풍그룹의 지주사인 영풍은 지난 2011년 처음으로 황제주에 입성했다. 당해 6월 20일 주식시장에서 100만2000원으로 장을 마감하면서 새롭게 황제주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롯데제과, 롯데칠성, 태광산업, 아모레퍼시픽 등 4개 종목만이 황제주의 위엄을 뽐내던 때다. 영풍은 지난 2015년 7월에는 160만 원대(7월 10일 161만9000원)를 호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풍은 2018년 들어 황제주에서 밀려났다. 2018년 3월 2일 장중 100만3000원까지 올랐으나 97만8000원으로 장을 닫았고, 이후로는 황제주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이후 영풍의 주가는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 '업황 부진에 관세 폭탄까지'…영풍 주가, 2018년부터 내리막길
영풍의 주가가 하락가도를 달리게 된 데는 주요 자회사들의 업황 부진과 관세 폭탄 등 대외변수가 영향을 미쳤다. 영풍은 고려아연을 비롯해 IT 부품사인 인터플렉스, 코리아써키트, 시그네틱스 등을 주력 계열사로 두고 있다.
인터플렉스와 코리아써키트가 '아이폰Ⅹ'의 물량 급감으로 2018년 상반기 실적이 부진한 것이란 전망이 불거지며 영풍의 주가는 주춤하기 시작했다. 2018년 1월 30일(현지시간) 애플은 당해 1분기 아이폰Ⅹ 생산량을 당초 계획 물량 4000만대의 절반인 2000만대로 줄인다는 방침을 세우고, 이를 각국 주요 부품 공급업체에 통보한 바 있다.
아이폰용 올레드패널에 쓰이는 경연성인쇄회로기판(RFPCB)을 공급하던 인터플렉스가 입은 타격은 상당했다. 당해 연초 4만8000원대를 기록하던 인터플렉스는 불과 2개월여 만에 1만8000원대에서 거래됐고, 이후 등락을 거치다가 이듬해 연초에는 9000원대까지 주저앉았다.
당시 증권가에서는 인터플렉스가 고객사에 물량 공급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공급과잉으로 점유율을 늘리기 쉽지 않다는 전망을 쏟아냈다. 인터플렉스 및 영풍의 실적 전망치와 목표주가 하향조정 또한 잇따랐다.
여기에 2018년 3월 1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각각 25%와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하겠다고 밝히면서 또 한 번 영풍의 주가는 타격을 입었다. 당시 영풍은 고려아연의 지분 26.9%를 보유하는 최대주주였다. 주가 하락을 거듭하던 영풍은 2019년 3월 27일에는 38만2000원까지도 고꾸라졌다.
◆ 영풍 vs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격화…'막상막하'
이후 영풍의 주가는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으로 인해 롤러코스터 장세를 연출했다. 고려아연 경영권을 두고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을 중심으로 한 장 씨 일가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주축이 되는 최 씨 일가의 지분 매입 추이에 따라 주가가 널뛰기했다.
지난 2022년 11월 18일 장중 영풍은 90만3000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영풍 주가는 50만 원대에서 횡보 중이다. 지난 23일 영풍은 전 거래일(51만6000원) 대비 0.19%(1000원) 상승한 51만700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최근까지도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를 위한 양 가의 지분 취득 경쟁은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고려아연의 몸집이 커지는 상황에서 고려아연 측이 배당을 축소하며 영풍의 돈줄을 줄이자 분쟁은 격화하는 모습이다. 고려아연은 지난 19일 이사회를 열고 내달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1주당 5000원의 결산배당 승인과 신주인수권 및 일반공모증자 정관 변경 등의 안건을 처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작년 말 기준 고려아연 지분 25.28%를 갖고 있는 보유한 영풍은 이사회 이튿날인 20일 즉각 입장문을 냈다. 영풍 측은 "고려아연은 지난해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자사주 교환 등으로 기업가치와 일반 주주 이익을 침해했다"며 "고려아연 주주들은 주가 하락, 지분가치 희석, 배당금 감소의 삼중고를 겪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영풍은 "이익잉여금이 약 7조3000억원으로 여력이 충분한 상태에서 배당금을 줄인다면 주주들의 실망이 크고 회사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갖게 돼 주가가 더욱 하락할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고려아연의 결산 배당이 5000원으로 결정되면 올해 전체 배당금은 지난해보다 5000원 줄게 된다.
영풍은 고려아연의 신주인수권과 일반공모 증자 등의 정관 제17조 변경에 대해서도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영풍은 "고려아연은 2022년 9월부터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등을 통해 전체 주식의 16% 상당 지분을 외부에 넘겼다"며 "이 때문에 주주 가치가 훼손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따라 영풍은 오는 3월 19일 열리는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에서 최 회장 측과 표 대결을 벌일 예정이다. 현재 장 씨 일가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32.0%다. 최 씨 일가의 보유 지분은 15% 수준이지만 현대차와 한화 등의 우호지분을 고려하면 지분율은 33.2%까지 올라 막상막하다. 시장에서는 주총 이후 영풍의 주가 향방이 좌우될 것으로 보고 있다.
◆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임박…저PBR 수혜 가능성도
이밖에 영풍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으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지난 1월 24일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기업의 주주가치 제고 노력을 독려·지원하기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기업이 자체적으로 저평가된 이유를 분석하고 대응전략을 마련해 기업 가치 제고 및 투자자와의 소통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PBR(주가순자산비율)이 낮은 상장사들에 기업 가치 제고 계획 공시 △PBR, ROE(자기자본이익률) 등을 시가총액, 업종별 비교 기재 △주주 가치가 높은 코리아 프리미엄 지수 상장 등을 골자로 한다. 구체적인 안은 26일 발표될 예정이다. 대표적인 저PBR 종목으로 꼽히는 영풍 입장에서는 주가 부양을 기대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주가가 반등했음에도 영풍의 PBR은 이달 23일 기준 0.22배에 그친다.
현재 영풍은 5년 전 총 7000억원 규모 종합 환경투자 계획을 2025년까지 수립, 추진하는 등 이미지 개선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다만 이같은 노력에도 최근 비소 중독 사고로 4명이 사상한 영풍 석포제련소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인 점은 리스크로 꼽힌다.
김현태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영풍의 최근 주가 반등은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으로 전통적인 저PBR 기업들이 급등한 데 따른 영향이 가장 크다고 판단된다"며 "현재의 반등 흐름이 이어지려면 정책에 부합하는 주주가치 제고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영풍은 지난해 3분기 연결 기준 491억원 영업이익을 거뒀다. 누적 기준으로는 영업손실 536억 원을 기록했다. 4분기를 포함한 2023년도 실적은 영풍 주주총회(3월 20일) 일주일여 전인 3월 13일께 공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