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선영 기자] 금융당국이 보험업계 경영진을 소환해 보험사 간 과당경쟁과 보험설계사 스카우트 전쟁에 대한 자제를 요구했다. 당국은 보험업계에 불건전 영업관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감독 권한을 최대한 활용할 것을 예고했다. 보험업계는 경쟁 과열로 인한 문제점이 반복돼 결국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다만 보험사들의 성장 의지를 억제하는 부작용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2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20일 이세훈 수석부원장 주재로 서울 광화문 생명보험교육문화센터에서 생명·손해보험사 최고경영자(CEO)들과 함께 '보험업권 현안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15개 주요 보험사 경영진이 참석했다.
금감원은 간담회에서 보험사들에 불건전 영업 관행 개선, 리스크 관리 역량 제고 등 2가지를 당부했다. 특히 보험상품 판매 과당경쟁과 단기실적 중심 영업 등으로 인한 불건전 모집과 소비자 피해 등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 수석부원장은 "단기이익에 급급해 소비자 신뢰를 저버리는 불건전 영업 관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CEO 등 경영진이 깊은 관심을 기울여달라"며 "감독당국도 일부 보험회사·판매채널의 불건전 영업관행과 단기 출혈경쟁에 대해서는 감독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공정한 금융질서가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적극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단기납 종신보험은 잇따른 당국의 지시를 받으며 시험대에 오른 모습이다. 당국은 최근 각 생명보험사들에게 단기납 종신보험 환급률 개선을 위한 자료제출을 요구하기도 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 15일 자료제출 요구 시스템(CPC)을 통해 무·저해지 단기납 종신보험 환급률 시뮬레이션 분석 결과를 지난 20일까지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
단기납 종신보험은 5년 또는 7년 납입 이후 10년까지 보험계약을 유지하면 납입한 보험금보다 최대 135%까지 더 돌려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최근 금감원이 과열 경쟁을 지적해 환급률을 120%대까지 낮췄다.
그러나 금감원은 120%대 환급률도 여전히 높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환급률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라 단기납 종신보험의 환급률이 110% 수준까지 낮춰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단기납 종신보험 외에도 보험사들은 최대 60만 원 보장하는 상급종합병원 1인실 입원비 일당, 최대 1억원 규모의 변호사 선임비용을 보장하는 운전자보험, 회당 100만원까지 보장하는 독감 보험 등의 과당경쟁으로 금감원의 지적을 받아왔다.
문제는 불완전판매를 우려한 금감원의 경고에도 법인대리점(GA)을 중심으로 절판 마케팅은 여전히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에 두더지잡기 식 규제가 과당경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만 만들었다는 비판이 따랐다.
최근 보험사들은 상급종합병원 1인실 입원 일당 한도를 경쟁적으로 높이고 있다. 삼성화재가 건강보험과 자녀보험에 상급종합병원 1인실 입원비 일당 한도를 60만원으로 올리자 DB손해보험과 현대해상도 60만원의 보장 담보를 내놨다. KB손해보험과 메리츠화재도 55만원으로 한도를 높였다. 한화생명은 상급병원 1인실에 이어 다인실도 입원 일당 45만원을 지급하는 상품을 한시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이에 도덕적 해이 가능성이 지적됐다. 정액 지급 방식으로 1인실 비용이 적으면 차액을 받을 수 있고 입원기간이 길수록 보험료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변호사선임비용 특약 보장 경쟁이 도마에 올랐다. 당초 보장금액은 1000만~3000만원 수준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2분기 들어 5000만원, 1억원 등으로 높아지는 등 과열 양상을 보였다. 이후 자기부담금 신설 루머, 금감원 제재 가능성으로 이어지며 절판 마케팅이 시작됐다.
독감 관련 특약들도 당초 10만~20만원에 불과했던 보장금액에 대해 최대 100만원까지 보장금액을 올리면서 당국의 제재를 받았다.
특히 보험 본연의 기능보다는 저축, 환급 등을 강조한 판촉이 많았고 이를 재테크 상품으로 판매한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납입기간 중 해지할 경우 환금률이 낮고 만기시에는 보험사의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
보험업계는 경쟁 과열로 인한 문제점이 반복돼 결국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다만, 보험사들의 성장 의지를 억제하는 부작용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종신보험은 업계가 위축, 내리막길을 걷는 가운데 금융소비자 부담을 줄이고 혜택을 높여 종신보험을 조금이라도 팔기 위한 업계 차원의 노력이라고 본다"며 "시장과 소비자가 변하면 상품도 변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건전성을 고려해 무한정 파는 게 아니라 어느정도 수요예측과 테스트도 했을 텐데, 모든 활로를 막는 건 생보업계 손과 발을 묶고 상품개별 경쟁과 노력을 꺾는 부작용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금감원이 상품개발부터 설계사 수수료 지급까지 보험상품 판매 전반에 걸쳐 근본처방 마련할 것을 선언하면서 2017년 이후 폐지된 보험상품감독국이 부활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과거 금융당국은 보험상품을 사전인가 해왔으나 보험상품 자율화 시행 이후 현재까지 보험사 상품에 대해 사후 관리만 하고 있다.
실제로 이복현 금감원장은 최근 금감원 보험담당 부서에 "보험사들의 과당경쟁이 반복돼 단기처방이 아닌 근본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금감원 보험감독국, 보험리스크관리국, 상품심사판매분석국 3개 부서가 중심이 돼 지난해부터 반복되는 보험 과당경쟁에 종합적인 대책을 내놓으라는 주문이다.
이와 관련 또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위험도와 영향력을 잘 확인해서 그에 맞게 감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슈의 경중을 따져 보험업권의 성장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감독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