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윤정원 기자] 동원그룹의 지주사인 동원산업이 자사주 전량을 소각하고 한 달가량이 지났다. 그러나 동원산업의 현재 주가는 자사주 소각 발표가 이뤄져 급등세를 이뤘던 당시보다 낮은 수준이다. 여기에 더해 동원산업이 아쉬운 실적을 발표하면서 주가 부양을 기대했던 투자자들의 우려는 고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동원산업이 자진 상장폐지를 고려하고 있는 게 사실 아니냐는 추측에 무게가 실린다.
◆ 자사주 전량 소각 방침…이례적 결정에 개미들 '환호'
동원산업은 지난달 16일 서울 서초구 소재 동원산업빌딩에서 이사회를 열고 자기주식 보통주 1046만770주를 소각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소각량은 발행주식 총수의 5분의 1이 넘는 규모(22.5%)다. 소각 예정 금액은 전날인 1월 15일 종가 기준으로 약 3290억 원에 달한다. 소각 기준일은 5월 2일로, 자사주 소각에 따라 발행주식 총수는 4648만2665주에서 3602만1895주로 감소하게 된다.
동원산업은 지난해 8월 전체 발행주식 수의 7% 규모인 자사주 350만주를 소각하고 잔여 자사주를 향후 5년간 단계적으로 소각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회사 측은 자사주 전량 소각 방침을 밝히면서 "주주 환원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주주 가치를 적극 제고하기 위해 잔여 주식 전량을 일괄 소각하기로 결정했다"며 "앞으로도 기업가치를 올릴 수 있도록 다양한 주주환원 정책과 신사업 투자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가 발행주식 총수의 20% 이상을 한 번에 소각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동원산업은 지난해 4월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약 397억원의 배당(주당 배당금 1100원‧시가 배당률 2.1%)을 실시하고, '선 배당액 확정, 후 배당 기준일 지정'이라는 배당 선진화 정책 또한 도입했던 터라 자사주 전량 소각 발표 이후 소액주주들의 환호가 잇따랐다.
실제 동원산업 주가는 자사주 소각 효과에 즉각 응답했다. 소각 발표일 동원산업은 전 거래일(3만1450원) 대비 25.76%(8100원) 오른 3만955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장중 동원산업은 4만850원까지 뛰며 상한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튿날인 17일부터는 상승 폭을 반납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같은 달 26일부터는 재차 상승세를 거듭했고, 이달 5일 장중에는 4만3150원까지 솟는 기염을 토했다.
◆ 금세 사그라진 동원산업 주가 급등세…실적도 부진
하지만 주가 상승곡선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동원산업은 이달 6일 2.38%, 7일 1.41%, 8일 0.65% 사흘 연속 내렸다. 13일에는 1.97% 오르며 장을 마감했으나 14일에는 또다시 0.90% 떨어지며 거래를 마쳤다.
주가 하락을 부추긴 것은 실적 영향이 컸다. 전날인 14일 동원산업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4644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6.1%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공시했다. 이 기간 동원산업의 매출은 8조9483억원, 당기순이익은 2716억원을 기록했다. 1년 전보다 각각 0.9%, 8.4% 줄어든 수준이다.
사업 부문별로 살펴보면 포장재 사업 부문 등이 글로벌 경기 침체로 마이너스 성장한 영향이 컸다. 포장재 사업 계열사인 동원시스템즈의 경우 엔데믹에 따른 마스크 수요 감소와 미주 시장으로의 알루미늄 수출 감소로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1조2767억원, 809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보다 매출액은 11.2%, 영업이익은 12.0% 쪼그라들었다.
동원산업 사업 부문의 경우 참치 어획 호조로 인해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5.7% 증가한 1조902억원을 기록했으나, 유통 영업 부문의 판매 부진으로 영업이익은 16.9% 감소한 1268억원에 그쳤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수산, 식품, 포장재, 물류 등 그룹의 핵심 사업 전반에 경영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며 "경영 효율화와 수익성 개선을 통해 기존 사업의 내실을 다지는 한편 미래 사업을 위한 과감한 투자로 지속 가능한 성장 구조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 오너 일가 지분 90% 달해…개미들 '좌불안석'
맥을 못 추는 주가 속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주가 상승 기대감은 사라지고 상장 폐지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는 모습이다. 자사주 소각에 따른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90%에 달하면서 상장폐지 절차를 밟는 게 아니냐는 풀이가 나오는 것이다. 현행 상법에서는 지배주주 보유 주식과 기업 자사주 합계가 발행주식의 95% 이상이면 자진 상장폐지가 가능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최대주주등소유주식변동신고서에 따르면 이달 14일 기준 김남정 동원그룹 부호장이 갖고 있는 동원산업의 지분은 2156만9875주(46.40%)다. 여기에 김재철 동원산업 명예회장(774만2020주‧16.66%)과 동원육영재단(157만5960주‧3.39%), 기타 친인척과 임원이 보유한 지분을 더하면 3168만1676주, 68.16%에 이른다.
다만, 상장폐지와 관련해 동원그룹 측은 "전혀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소액주주들의 지분 가치를 늘리려다 보니, 소액주주뿐만 아니라 최대 주주들의 지분율도 늘어나게 된 것"일며 "요건이 갖춰진다 할지라도 동원산업은 자진상폐에 나설 이유도, 의향도 전혀 없다"고 답변했다.
동원산업은 현재 지속 가능한 성장 구조를 구축하며 주주 환원의 좋은 본보기가 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실제 동원산업은 실적 공시와 함께 1주당 배당금을 1100원으로 확정한 상태다. 배당 성향은 연결 기준 13.4%에서 14.6%로 확대됐다.
한편,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36분 기준 동원산업은 전 거래일(3만8500원) 대비 2.21%(3만7650원) 내린 3만7650원에 거래되고 있다. 금일 동원산업은 3만8850원으로 문을 열었지만 개장 직후 하락세로 전환, 내림폭을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