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한림 기자] 실적 우려와 주가 부진에 이중고를 겪던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자 창사 이래 최초로 자사주 소각 카드를 꺼내 들었다. 주당순이익(EPS)을 높여 단기적인 주가 상승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다만 수익성 악화에 따라 장기적인 주가 부양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이사회를 열고 자사주 491만9947주 소각을 결의했다고 6일 밝혔다. 이는 2011년 SK이노베이션 출범 후 처음 있는 일로, 규모는 약 8000억원에 달한다. 소각 예정일은 20일이다.
목적은 주주가치 제고 방안 마련이다. 김진원 SK이노베이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6일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최근 정부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완화 정책에 부응하고 주주와 대화 등을 통해 주주 여러분께 약속한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적극 이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주주들은 다소 반기는 분위기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 주가가 배터리 자회사 SK온의 지속된 실적 우려로 상승 여력을 받지 못한 데다가, 투자비 조달을 위해 유상증자를 단행하면서 급락했기 때문이다. 주주들은 당시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요구하는 등 배당이 아닌 강력한 주가 부양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주가는 6일 12만800원에 장을 마감했고, 7일장에서는 12만2000원대에 거래되면서 여전히 허덕이고 있다. 연중 최저가를 기록한 10만7500원(2024년 1월 31일)보단 11%가량 올랐으나, 연고점(2023년 7월 26일, 22만5000원) 대비로는 47%가량 떨어졌다. 이번 자사주 소각이 악화한 수익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투자 재원 마련이 절실하지만, 주가가 크게 내려와 있어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보는 평가도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의 강수가 장기적인 주가 상승에 적합한 수일지는 미지수다. 본업인 석유화학부문이 부진한 데다 적자를 이어가는 배터리 사업 업황도 크게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아서다. 자사주 소각이라는 호재에도 장기적 주가를 판가름하는 기업 펀더멘탈(기초체력)이 뒷받침하지 못한 것도 급등세를 전환하기 어려운 배경으로 풀이된다.
증권가도 SK이노베이션의 눈높이를 낮추고 있다. 7일 메리츠증권은 SK이노베이션의 투자 의견을 '매수'로 유지했으나 목표가를 기존 17만원에서 15만원으로 하향 조정했고, 하나증권과 SK증권은 기존 18만원에서 16만원으로 낮췄다. 특히 메리츠증권은 SK이노베이션이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발표했음에도 주가가 되레 하락하면서 투자자들의 매력도를 끌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노우호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SK이노베이션은 주주가치 제고 이행을 공시했지만 전일 주가는 되려 4.9% 하락했다. SK온의 불리한 영업환경, 수익성 부진 장기화, 기존 사업부의 뚜렷한 업황 개선 여부 미지수, 재무 건전성 악화 장기화 우려로 지속 가능한 주주가치 제고 방안이 아니라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한편 SK이노베이션은 전날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51.4% 감소한 1조9039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77조2885억원으로 0.98% 줄었고 당기순이익도 71.2% 내린 5463억원에 그쳤다.
사업별로는 석유(8109억원), 화학(5165억원), 윤활유(9978억원), 석유개발(3683억원), 소재(110억원) 등이 흑자를 냈고 배터리는 영업손실 5818억원을 기록했다.
김 CFO은 "대외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도 시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안정적 재무구조 아래 수익을 지속 창출하겠다"며 "이를 통해 기업 가치를 지속적으로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